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일(현지시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계획을 밝히며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유동성 파티’의 종료를 선언했지만, 시장은 되레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자산 매입 축소는 곧 시장 유동성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악재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연준의 발표가 기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금리 인상 가능성 등 시장에 남아있던 불확실성도 해소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연준의 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연준은 매달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각각 800억달러, 400억달러(총 1200억달러, 약 142조원)씩 매입하고 있는데, 이 규모를 매달 100억달러, 50억달러씩 줄여나가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달 중순부터 8개월간 테이퍼링을 진행해 다음 해 6월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테이퍼링 계획이 발표됐음에도 시장은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 미국 양쪽 증시 모두 되레 상승세를 탔다. 미 S&P500 지수는 0.65% 오른 4660.57을 기록했고, 성장주 위주의 나스닥도 1.04% 올라 1만5811.58을 기록했다. 코스피도 전날 대비 0.25% 오른 2983.22에 장을 마무리했다. 장중에는 3011.56까지 치솟았다.
일반적으로 테이퍼링은 시장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효과를 내는 만큼 증시에는 악재로 평가된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증시 폭등에는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쏟아낸 막대한 유동성의 역할이 컸던 만큼, 테이퍼링은 증시 랠리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그럼에도 증시가 선방한 것은 연준의 이번 발표가 시장의 기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선 이미 연준이 올해 안에 테이퍼링을 시작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테이퍼링 규모와 속도도 지난달 공개된 9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언급된 내용(매달 150억달러 축소)과 일치했다. 테이퍼링에 따른 증시 악영향이 시장에 충분히 선반영된 탓에 테이퍼링 소식에도 증시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준이 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기준금리 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못 박은 것도 증시 선방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파월 의장은 “완전고용상태 충족과 2%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률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이상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된 만큼 시장은 우호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단기자금시장에는 유동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양적 완화보다는 기준금리가 실물경기에 더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도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이번 FOMC 결과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큰 무리 없이 소화되며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의 테이퍼링이 국내 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해 가계·기업의 이자 부담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는 상당하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을 구매한 대출 수요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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