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대장동 2015

입력 2021-11-05 04:06

‘1970년, 욕망이 춤추는 땅.’ 서울 강남 개발 초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강남 1970’ 포스터에 적힌 카피는 얼마간 식상한 느낌마저 든다. 그만큼 땅과 욕망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큰 이물감 없이 어울린다. 영화는 강남이 개발된 여러 배경 중 하나인 힘 있고 돈 있는 이들의 욕망에 집중한다. 자신이 강남 이주 1세대인 유하 감독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접한 후 이야기의 큰 줄기를 구체화시켰다.

손 교수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박종규 지시로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이 현 강남 지역 땅을 사들였다. 이 과장이 대규모로 땅을 사면 나머지 자투리 땅은 복부인들이 샀다고 한다. 그 결과 1970년 5월 기준 약 24만평의 땅을 매입했고, 1971년 초부터 매각하기 시작했다. 매입과 매각 사이 강남 개발 윤곽을 담은 ‘남서울 개발계획’(1970년 11월)이 발표됐다. 정보와 돈을 손에 쥔 이들이 뻥튀기한 돈은 1971년 대선과 총선을 위한 자금으로 쓰였다는 게 손 교수 설명이다. 땅을 산 과장은 도시계획국장으로 승진했고, 그 뒤를 이어 도시계획국장으로 일한 이가 손 교수였다.

개발 과정에서 욕망을 위한 땔감으로 돈과 정보를 쓸 수 없는 이들은 밀려났다. 개발 바람을 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바뀜’이다. 유 감독은 ‘강남 1970’과 동명의 소설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처음 맞닥뜨린 강남은 농경문화와 도시문화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기이한 공간이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온 모교 또한 이주민과 원주민의 자녀들이 책상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원주민이었던 친구들이 더 남쪽으로 밀려나 자퇴 또는 퇴학의 형태로 학교를 떠났다.”

밀려난 이들이 모인 지역 가운데 경기 성남이 있다. 1969년 5월부터 서울 청계천 등에 거주하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은 군용차와 청소차에 실려 광주군 중부면(성남시 수정구·중원구)으로 이주했다. 판자촌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언덕배기 허허벌판으로 쫓겨 간 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후 땅을 불하받기 위해 이주민들로부터 입주권을 산 사람 등이 더해지며 15만명 넘게 거주하는 ‘광주대단지’가 만들어졌다.

광주대단지는 많은 주민이 몰려 일할 곳이 부족했고, 교통도 변변치 않았다. 먹고살기 막막했거나 건축비가 없어 집을 짓지 못한 이들은 입주권을 브로커 등에게 팔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개발이 시작되자 투기꾼이 몰렸고, 입주권 가격은 치솟았다. 정부와 서울시가 입주권을 전매한 이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불하하고, 각종 세금까지 더하는 등 부조리를 반복하자 마침내 주민들이 폭발했다. 당시까지 정부 수립 후 최대 소요라는 ‘광주대단지사건’(1971년 8월 10일)이다. 주민 3만여명이 광주경찰서 성남지서를 부수는 등 차츰 민란 양상으로 변하자 서울시장은 주민 요구를 수용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차츰 사실 관계가 드러나는 2015년 대장동 개발 사업 추진 과정에는 노골적으로 개인 정보를 활용해 땅을 산 청와대 권력자도, 강제 이주의 폭력도 없다. 하지만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사업”이라는 평가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소수가 땅으로 부풀린 수익이 막대하다. 그들이 뒤에서 자신들의 최대 공약수를 찾기 위해 마련한 설계는 땅의 원주민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줄였을 것이다. 대신 땅과 무관했던 법조인과 정치인, 그 가족들까지 수익을 나눠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러고 보면 땅의 이익을 소수가 독점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이 밀려나는 구조는 1970년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현길 사회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