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세종청사 A부처 국장실에는 특별한 설비가 있다. 국장실 모서리 위쪽에 설치된 이 조그마한 설비는 세로로 늘어선 3개의 램프로 구성돼 있다. 비정기적으로 빨간 불이 켜졌다 꺼진다. 흥미로운 부분은 각각의 램프마다 명패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장관’ ‘차관’ ‘1급’이라는 직책이 적혀 있다. 청사 내에 장관이 있을 경우 불이 들어오고 외부 일정으로 청사를 비울 경우 불이 꺼지는 식이다. 가히 ‘무두절(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 알림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법한 첨단(?) 설비다.
무두절 알림이는 업무 긴장도를 완화하는 작용을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빨간 불이 켜져 있으면 갑자기 현안 관련 회의 소집이 있을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갖고 업무에 임하면 된다. 예측 가능한 현안을 훑어보고 준비해두면 예정에 없던 호출을 받더라도 상사에게 질책을 받는 일을 피해갈 수 있다. 반대로 빨간 불이 꺼져 있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업무를 보면 된다. 현안 외에 밀려 있던 일들도 시간을 갖고 천천히 살펴볼 여유가 생긴다. A부처 관계자는 4일 “정말 유용한 장치”라고 극찬했다.
정부과천청사 시절만 해도 각 부처 국장실에서 어렵지 않게 무두절 알림이를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국장실에 업무 보고 차 들어가면 장·차관이 청사에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12년 정부세종청사 시대가 개막하면서부터는 고릿적 이야기가 됐다. A부처에 설치된 무두절 알림이는 멸종위기종이라 해도 될 만큼 ‘희소 설비’로 평가된다. 존재 자체를 몰라서 설치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공무원은 “지금 우리 부처에 그걸 좀 설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에 대한 하소연과 함께 나온 말이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