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강태정!’ 우산이나 핸드폰은 물론, 책가방을 버스에 놓고 내렸다는 사실도 다음 날까지 몰랐고, 토요일에 늦었다고 급히 택시를 불러 텅 빈 학교에 가는 내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스친 자리는 늘 달팽이집이었다. 치우지 않은 음식물과 쓰레기, 벗어 놓은 옷, 책상 위의 이불은 일상이었다. 말도 정신없이 하며 아무데나 끼어들어 참견을 했다. “딸이 밝게 커서, 참 좋으시겠어요.” 할 때, 어머니는 “한번 같이 살아보세요.” 하셨고, 아버지는 “재는 아무리 눌러도 풍선처럼 붕붕 뜨니까 계속 눌러줘야 돼!” 하셨다. 전도하러 나갔다가 친구들과 모여 밤새워 사명과 세상을 오가다 바로 새벽기도에 가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폭풍 오지랖’이라고 놀렸다.
‘이건 아니다. 신앙의 재정비를 위해 신앙훈련을 받자.’는 다짐으로 교회훈련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질서 있는 단체생활과 엄격한 규칙을 견디지 못하고 3일 만에 나왔다. 이런 모습에 신앙의 위기감을 느꼈지만 예수님도, 하나님도 보이지 않고 뿌옇기만 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전혀 없고, 막연한 대상을 믿고 있다는 것을 성령께서 비춰주셨다. 손에 한 뭉치 휴지를 들고 밤새 춘천시내를 울며 헤매다가 간절한 마음으로 엎드렸다. 새로운 마음으로 사복음서를 읽는데 너무나 좋은 예수님의 인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간음한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분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겠구나. 이분만 만나면 정말 내가 살겠구나!’는 희망이 보였다.
그러다 로마서 11장의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말씀을 보게 됐다. 초점이 모든 만물의 근원인 절대자에게 맞추어졌다. 순간,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됐고, 성경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셔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그동안 느낌과 감정에 의지했던 노력들이 걷히며 예수님의 부활이 내게 실제가 되었다. 하나님 머리 위에 올라가 많은 성경지식으로 하나님을 헤아리고 비기려 했던 내 마음엔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수님을 버린 지옥 갈 이 죄가 알아지는 순간, 나는 즉시 주인 되었던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이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라 주님의 자리입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니 20년 만에 ‘하나님’과 ‘내’가 한 문장 안에 들어갔다. 내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말투, 외모, 성격이 안정되고 옷은 옷장에, 책은 책꽂이에, 이불은 장롱에 잘 정리됐다. 예수님의 사랑에 날마다 감격하는 진정한 동행이 시작되며 팝콘처럼 튕겨져나온 교회훈련관에도 다시 들어갔다. 넓은 오지랖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은사로 쓰이고, 주변의 신뢰도 한 순간에 회복되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발령받아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귀한 영혼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학교에 기독교 봉사 나눔 학생 자율동아리를 개설했다. 어둡고 눌린 학생들, 보육원에 지내는 학생, 무기력한 학생 등이 예수님으로 인해 기쁘게 생활하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일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듯, 매일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고 주님만 바라보며 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대로 그 길을 따라 갈 것이다.
강태정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