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성 녹내장의 시각장애자로 왼쪽 눈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른쪽은 겨우 물체의 윤곽만 알아본다. 어머니는 나를 임신했을 때 떠돌이 약장수의 약을 사 먹고 그렇게 되었다며 평생 죄인처럼 사셨다. 어느 날 옆집 아줌마와 언쟁을 하시다가 ‘그러니까 병신을 낳았지!’라는, 가슴을 도려내는 말을 들었는데 ‘나만 없으면 저런 소리 듣지 않고 행복하게 사시겠지.’하는 생각을 한 후,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남들보다 노래를 잘 해 교회에서 찬양으로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해 신학교 종교음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때가 내 신앙의 위기였다. 시력 장애의 좌절감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았다. 전철역에서 발을 헛디뎌 선로로 떨어지고, 3분이면 가는 길을 한 시간이나 헤매기도 하는 등 대학 4학년 때 눈은 극도로 악화되었지만 차마 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수술을 받고 부작용으로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에 있던 목사님이 내게 세계적인 작곡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6개월 후 재수술을 받아 다행히 빛과 형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5년 정도 선교단체에서 찬양을 인도하며 신앙생활과 음악에 몰두했다.
그러다 어머니를 통해 춘천한마음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나를 귀하게 본 연상의 중학교 영어교사 자매를 만났다. 과분한 대상이란 생각에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권유와 기도응답을 받고 결혼을 했다. 모태신앙으로 신학교에서 종교음악을 전공했지만, 막연한 내 신앙은 상황에 따라 흔들렸다. 사람들은 ‘너는 영이 맑아서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내겐 세상도, 하나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수많은 기적을 직접 보고도 예수님의 죽음 앞에 도망쳤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드디어 믿게 된 사실이 내게도 실제가 되었다. 막연했던 천국과 하나님 사랑, 그리고 예수님 안의 기쁨과 평강, 또 다 가진 자가 되었다는 말씀 모두가 내 것이 되었다. 부활이라는 확실한 증거로 어둠 가운데 참 빛이신 예수님이 선명해졌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였다. 전능자가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무시했던 악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셨다.
동일한 일상만 반복하던 나는 장애에서 해방되어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 작곡을 하고 기쁨으로 찬양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많은 곡이 예배 때마다 불리고, 요한복음 16장 9절 말씀으로 만들어진 찬양을 듣고 초신자나 믿음에 확신이 없는 많은 분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에서 공동체와 함께 제작한 앨범이 오랫동안 음원사이트 상위권에 랭크되며 널리 번지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감사의 선물이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실용음악 전문교수님과 교회 찬양팀이 연결되어 3집 앨범을 출시했고 어린이 찬양을 비롯한 여러 앨범 등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부활의 감격과 십자가의 사랑, 우리의 신분과 교회와 사명 등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과 지체들의 간증이 찬양으로 울려 퍼질 때 공동체와 함께 놀라운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날마다 경험한다. 우리 찬양팀의 목표는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찬양을 통해 전세계에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것이다. 시골의 작은 찬양팀이 세계복음화의 원대한 꿈을 품게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내 삶 전체가 아름다운 찬양과 예배가 되기를 날마다 기도한다.
김훈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