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하나님’ 호칭 사용 정착… 구약 최초 번역 피터스 목사 잊어선 안돼”

입력 2021-11-04 03:05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난 박준서(81·사진) 연세대 명예교수는 세 권의 책을 꺼냈다. 두 권은 최근 그가 낸 책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와 ‘시편촬요’(대한기독교서회)였고, 한 권은 지퍼백 속에 고이 담긴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1871~1958) 목사의 설교 노트였다. 손바닥 크기의 색 바랜 갈색 노트엔 피터스 목사의 글씨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이어 ‘시편촬요’를 펼쳐 옛 찬송가 한 장을 보여줬다.


“피터스 목사가 이사야 53장을 바탕으로 1898년 작사한 찬양이에요. 운율과 띄어쓰기 보세요. 놀랍지 않습니까. 당시는 띄어쓰기가 보편화되기 전이었는데 말이죠.”

피터스 목사는 1898년 최초로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27세 청년이었던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시편 150편 중 62편을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번역했다. 미국성서공회의 ‘권서(勸書)’ 즉 성경 판매원으로 한국 땅을 밟은 지 3년 만이었다. 히브리어와 독일어 등 각종 언어에 능통했던 그였기에 가능했다. 이후 1937년 구약 개역 작업을 완료했다. 한국성서위원회의 공식 승인을 거쳐 이듬해 출간된 ‘개역 성경전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구약성경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박 교수는 “신약성경을 우리말로 최초 번역한 존 로스 목사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만, 피터스 목사는 목회자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교수는 피터스 목사의 공로 한 가지를 들려줬다. 피터스 목사가 개역 구약성경을 완성하기까지 한국교회는 ‘하나님’ 호칭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피터스 목사는 이 성경에서 ‘하느님’이 아닌 ‘하나님’으로 표기했고, 이후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으로 통일했다.

박 교수가 노구의 몸을 이끌고 피터스 목사를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다니는 이유는 뭘까. 2016년 박 교수가 미국 풀러신학교 방문연구교수로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였다. 평생 구약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인근의 피터스 목사 묘소를 참배하고 싶었다. 하지만 위치는커녕 인근 한인교회 목회자조차 피터스 목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어렵사리 찾은 묘소는 방치된 채 잡초만 무성했다. 그때 기독교계와 사회에 피터스 목사의 공적을 알리는 것이 교수로서 마지막 책임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다.

박 교수는 제정 러시아에 살던 피터스 목사가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인도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된 것도, 그리고 정통파 유대인이었던 그가 교회를 찾게 된 일이나 독일어에 유창했던 미국 선교사를 통해 회심하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담겨 있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이렇게 당부했다. “한국 사람들이 성경을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크나큰 은총입니다. 그 속에는 성경을 번역한 일꾼을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섭리도 담겨 있습니다. 은인에 대한 감사를 잊어선 안 됩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