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신으로 올해 대학에 입학한 A씨는 서울에서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짜리 하숙집에 살고 있다. A씨는 정부가 내년부터 저소득층 청년에게 월세 20만원을 무상지원해준다는 말에 솔깃했지만 부모가 월 400만원 이상 소득이 있어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A씨가 세대 분리를 해 단독세대가 될 경우 지원대상이 되지만 A씨 부모는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낼 형편이 안 된다. 이에 비해 대기업 임원을 아버지로 둔 취업준비생 B씨는 부모님 지원 덕에 보증금 3000만원에 월 30만원짜리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B씨는 자신의 소득이 없으므로 내년부터 정부로부터 매달 20만원씩 월세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가 청년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한다며 내년부터 월 20만원씩 월세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자칫 ‘금수저’들에게 역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청년층이 많이 사는 역세권이나 대학가 등의 임대료 시세를 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3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일정소득 이하의 저소득층 청년들에게 월세 2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 월세 특별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만 19~34세면서 부모와 별도 거주 중인 저소득 무주택 청년에게 1년간 월세를 20만원씩 지원해준다. 그동안 서울시를 비롯해 개별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저소득 청년층에 월세를 직접 지원해주는 사업은 있었지만, 중앙정부 차원 예산이 투입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업에는 국비 1369억원과 지방비 1633억원을 합쳐 3003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지원대상은 본인 소득 기준 중위소득의 60% 이하, 원가구소득은 100% 이하다. 올해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60%는 월 109만원, 3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월 398만원이다. 문제는 본인 소득은 낮지만,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높은 소위 ‘금수저’ 자녀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가는 ‘모럴 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대 분리(독립)를 한 청년은 부모 소득과 상관없이 본인 소득만으로 지원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A씨 사례처럼 독립시킬 형편이 안 되는 부모를 둔 청년들은 지원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월세 직접 지원정책은 임대료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6년 낸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위한 재정정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임대주택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임대료 직접 지원은 단기적으로 임대 수요를 높여 임대료 상승의 원인이 된다. 특히 청년 주거 수요가 높은 역세권의 소형 임대주택이나 대학가, 학원가 등의 임대료 시세가 뛸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최근 낸 ‘2022년도 예산안 분석’에서 이런 이유 등으로 이 사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총사업비가 3000억원을 넘기면 국가재정법에 따라 예비타당성조사를 해야 하지만, 정부는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과 국가 정책적 추진 필요’를 이유로 이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에 포함한 것도 논란이다.>> 관련기사 3면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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