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로 본 한반도 문명 빅히스토리

입력 2021-11-04 20:02
제주 서귀포에 있는 하논 분화구는 과거 빙하기 때부터 호수였다. 500여년 전 주민들이 벼농사를 짓기 위해 호숫물을 뺐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지막 방하시대인 최종빙기 중에 쌓인 호수 퇴적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바다출판사 제공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20년 넘게 고기후를 연구해왔다. 고기후 연구는 빙하 석순 나이테 꽃가루 퇴적물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선사시대 이전의 환경과 기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박 교수는 전 세계에서 보고된 고환경 자료를 선별해 정리하고 여기에 제주도 하논 분화구, 전남 신안 비금도와 광양의 습지 퇴적물, 선사시대 주거지 유적·유물 등 국내 자료를 분석해 한반도의 고대 기후를 복원했다. 기후가 인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힌 세계의 연구 결과를 참조하면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의 인류사를 기후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이렇게 탄생한 ‘기후의 힘’은 한반도의 기후와 환경, 역사를 하나로 엮어낸 첫 시도이자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적 범위는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된 이후다. 최종빙기 최성기(2만4000∼1만8000년 전) 이후가 주된 배경이다. 1만7000년 전 홀로세(지질시대 최후의 시대·현세)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빙하시대인 최종빙기에서 가장 추운 시기를 가리키는 최성기의 전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할 때 대략 6도 정도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동북아시아는 대부분 스텝(짧은 풀이 자라는 평원)으로 덮여 있었다. 제주도 하논의 꽃가루 분석 결과를 토대로 복원한 기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제주도 기온은 지금보다 7.5도 낮아 오늘날 강원도 태백시 기온과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모 사피엔스는 13만∼11만년 전 아프리카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순다랜드(현 동남아)를 거쳐 만주에 정착한 수렵·채집민 일부가 3만∼2만5000년 전 한반도에 들어왔다. 2만9000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는 점차 한랭해졌는데, 북중국의 수렵·채집민들이 따뜻한 해안을 찾아 대거 남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구상 최초의 농경은 1만2000∼1만년 전 서남아시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됐다. 이 시기는 최종빙기 최성기 이후 기후가 점차 올라가는 만빙기(1만8000∼1만1700년 전)에 해당한다. 한반도의 농경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절정이었던 5500∼5000년 전에 한반도에서 조·기장 농경이 시작됐고, 기후가 양호했던 3500∼2800년 전에 초기 벼농경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다.

벼농경을 기반으로 3000년 전에 금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 문명인 송국리문화가 나타났다. 2700∼2400년 전에 이르면 충청 이남 대부분 지역의 문화가 송국리문화로 대체됐지만, 2300년 전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췄다.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던 송국리문화의 쇠퇴 원인을 최근의 고기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광양 습지의 꽃가루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2800∼2700년 전 한반도의 기후는 갑자기 나빠졌다. ‘2.8ka 이벤트’(ka는 kiloannum의 약자로 1000년을 나타내는 단위)로 불리는 갑작스러운 단기 가뭄이 닥친 것이다. 이때 송국리문화인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으로 남하했고 일부는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갔다. 또 일부는 일본 규슈에 도착해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일본으로 이주한 송국리문화인들이 일본의 첫 문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쯤 되면 기후가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자는 환경결정론의 독단을 경계하면서도 기후 요인에 주목하는 신중한 태도로 논지를 전개한다.

홀로세 이후에도 기온은 여러 요인으로 출렁거렸다. 특히 몇 차례 치명적인 기후 악화가 있었는데, 당시 사례는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만빙기 초기에는 약 500년 동안 10m 이상 높아질 정도로 해수면 상승 속도가 빨랐다. 매머드 마스토돈 털코뿔소 등 대형 포유류가 주로 멸종한 시기도 만빙기로 밝혀졌다. 이것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울산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대곡천 절벽에 새겨진 신석기시대의 암각화. 바다출판사 제공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한반도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시기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포경 장면 등 다채로운 해양 활동을 그린 암각화가 해안이 아니라 내륙 깊숙한 곳에 있다는 사실은 신석기시대 한반도의 해수면이 거기까지 올라왔음을 시사한다.

8200년 전에는 기온이 상승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융빙수(빙하에서 녹아내린 물) 양이 급증해 강추위가 닥쳤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한랭기가 찾아올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8.2ka 이벤트’로 불리는 이 시기 기후 변화의 충격은 한반도에서도 확인된다. 비금도 꽃가루에선 8200년 전쯤 나무가 대거 고사하고 산림이 초지로 바뀌는 등 뚜렷한 식생 변화가 관찰된다.

4200∼3900년 전의 대가뭄은 ‘4.2ka 이벤트’라고 불리는데 북반구 전역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적도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의 저하가 기후를 급변시킨 것으로 보인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왕국, 피라미드로 유명한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고왕국, 파키스탄 지역에서 발흥한 인더스 문명, 중국 양쯔강 하류의 량주문화나 산둥의 룽산문화 등 번성하던 고대 문명 다수가 이 시기 큰 가뭄과 대홍수로 무너졌다.

지난 1000년 동안 지구의 기후 변화를 주도한 요인은 태양 활동과 화산 폭발이었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폭발 이후 세계적으로 여름철 기온이 크게 떨어졌고 대기근이 이어졌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경신대기근(1670∼1671년)과 을병대기근(1695∼1699년)은 평균 기온이 감소하는 소빙기에 나타난 이상 기온 현상으로 해석된다.

기후가 왕조의 성쇠를 좌우했다는 가설은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당·원·명 사회가 불안해지고 멸망의 길로 들어설 때마다 태양 활동이 저조하고 몬순은 약해 가뭄이 들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저자는 조선시대 영·정조(1724∼1800년) 치세와 이후 순조 재위기간(1800∼1834년)의 혼란을 기후 관점에서 비교한다. 북반구 기후 자료에 따르면, 1720년부터 1800년까지 비교적 높은 기온이 유지되다가 1800년경부터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기 시작해 1800년대 중반까지 그 기조가 이어졌다.

지구 환경과 인류 역사에서 기후의 작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현재의 기후 변화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상상하게 해준다. 특히 외국 사례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기후로 인해 일어난 변화상을 조망하는 것은 지구적 차원의 기후위기를 우리 문제로 생생하게 인식하게 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