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교회 가는 길

입력 2021-11-06 04:03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첫 주일예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감격과 설렘으로 가슴 벅찰 줄 알았건만 막상 심정은 무덤덤할 뿐이다. 현장 예배에 참석해야 실감이 나겠지만, 갑작스럽게 불어난 신자들 인파는 사뭇 낯선 풍경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통과해 예배당 의자에 앉는다 해도 불안을 떨쳐낼 수는 없다. 성도들과 가까이 붙어 앉아 찬송을 부를 생각을 하니 왠지 꺼림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독창이나 악기 연주로 갈음했던 성가대 찬양을 오랜만에 ‘완전체’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위드 코로나 종교시설 세부 규칙에 따르면 성가대는 접종 완료자로만 구성 시 인원 제한 없이 운용할 수 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성가대 지휘자도 볼 수 있겠다. 두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감동적인 찬양을 끌어낼 것이다. 성가대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노래하겠지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4성부가 일제히 부르는 합창은 힘차게 울릴 것이다.

성가대는 어떤 찬양을 부를까. 만약 ‘교회합창 명성가편1’을 택한다면 하이든의 ‘주를 찬양하세’나 베토벤의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 디킨슨의 ‘주의 이름은 크시고 영화롭도다’ 중 한 곡이 울려 퍼지기를 희망한다. 디킨슨의 곡은 위드 코로나 첫 주일예배엔 안성맞춤이다. 이 곡의 4성부 합창은 시작부터 목소리를 높여 “주의 이름은 크시고 영화롭도다”를 부르며 세계의 주관자가 하나님임을 선포한다. 곡은 처음부터 3분가량 포르테(f·세게)와 포르티시모(ff·매우 세게)로 노래한다.

그러다 갑자기 셈여림표는 피아니시모(pp·매우 여리게)로 바뀌며 합창 소리가 급격히 작아진다. 이 부분은 사실상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다. 앞부분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을 알리는 번개와 폭풍 같은 모습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그 하나님이란 존재가 다가와 속삭이며 말씀하는 부분이다. 16마디로 구성된 가사는 이렇다. ‘예부터 도움 되신 주, 내 소망 되신 주. 이 세상 풍파 많은 중에도, 늘 보호하시네.’

무엇보다 내일 주일예배에 가면 교회에서 꼭 확인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 영아예배실과 교회학교 교실이다. 과연 아기들은 다시 돌아오고 아이들의 현장 예배는 재개될까. 지난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허전하고 적막했던 예배당 공간이라면 영아예배실이었다. 언제나 젊은 엄마 아빠들과 아기들로 북적거렸던 곳. 부모들은 아기를 돌보며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육아 정보도 교환했었다. 이제 그곳에도 온기와 기쁨이 돌아올까.

소모임과 식사는 좀 더 참기로 하자. 교회밥 먹어본 지도 참 오래됐다. 식사가 허용되는 그날은 뭘 먹을 수 있을까.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정성껏 차려주시는 음식 대신, 온 성도가 집에서 음식을 싸 오면 좋겠다. 그리고 축제를 벌이듯 서로 음식을 나누며 코로나 극복을 축하하고 서로를 축복하면 좋겠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당연한 신앙 행위이기도 하다. 이 음식을 놓고 기도하고 함께 먹고 마시면 성찬이 된다. 그래서 내일 주일예배를 성찬예배로 드리는 교회가 많은 것일까. 아직은 함께 식사를 못하더라도 성찬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자. BC 1446년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으며 유월절 절기를 지켰던 그날처럼 ‘출코로나기’를 써보자.

물론 뉴노멀 시대에 현장 예배로 100% 회귀하자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가 코로나 이전으로의 회복은 아니다. 시대와 세계는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 개인도, 교회도 새로운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예배당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는 뉴노멀의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회가 공존하는 이 시대에도 교회 가는 길은 포기할 수 없다. 신자들이 함께 예배하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는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비를 누리고 싶다.

신상목 종교부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