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1일(현지시간) 호주에서 전 세계 에너지업계의 이목을 끈 사건이 발생했다. 인구 약 130만명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SA주)에서 1시간 이상 소비 전력의 100%를 태양광 발전을 통해 공급하는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이날 전력의 77%는 개별 가구의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됐다. 나머지 23%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에서 공급됐다. 태양광 발전의 독식에 가스·풍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초과 전력은 배터리에 저장되거나 인근 빅토리아주로 수출됐다.
당시 오드리 지벨만 전 호주 에너지시장위원회(AEMO) 최고경영자(CEO)는 이를 두고 “세계 에너지 환경의 대사건”이라며 “SA주 크기의 지역이 태양광 발전으로 완전히 운영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SA주의 성과는 이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가정용 태양광 패널 설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이달 말엔 세계 최초로 가정용 태양광 발전만으로 수요의 100%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 2위 석탄 수출국으로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호주가 에너지 전환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비결은 집집마다 설치되고 있는 옥상 태양광 패널이다.
에너지 전환은 가정으로부터
국민일보가 12일 세계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15년 23%에서 지난해 29%로 6% 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호주의 증가세는 훨씬 극적이다. 2015년에 13%에 불과했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해 27%로 배 가까이 뛰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가정용 태양광이다. 지난달 2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호주 에너지부는 보고서를 통해 가정용 태양광 성장이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2019년 23%에서 2030년 69%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망치는 1년 전보다 14% 높아진 것이다.
클린에너지카운슬에 따르면 지난해 호주 전역 주택에 약 38만개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는 2019년 29만개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현재까지 전국 300만 가구 이상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됐고, 이 비율은 전체 가구의 30% 수준이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은 3GW(기가와트)까지 증가했다. 이는 매일 1시간씩 한 달간 전기를 생산하면 월 300㎾의 전기를 사용하는 30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가정용 태양광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었던 데는 저렴한 가격이 한몫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조사결과 2009년 ㎿h당 359달러였던 태양광 균등화발전비용은 2019년 40달러까지 떨어지며 10년간 88.9% 감소했다. 설치비용도 상대적으로 싸다.
호주의 태양광 발전이 유망한 또 다른 이유는 날씨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대륙 중 하나다. 태양광은 항상 전기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전력 수요가 최고조에 달한 낮과 더운 햇볕이 드는 시간대에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일사량이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에너지 가격이 치솟자 많은 가구들이 태양광 패널 설치를 고려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에너지소비자’의 조사결과 응답자의 20%는 1년 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계획이거나 미래에 설치를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개별 가정으로 분산된 전력 시스템은 에너지 위기에도 단단함을 보이고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제 에너지 가격 역시 폭등했지만 호주 국내 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3분기 내내 하락한 것이다. 앵거스 테일러 에너지부 장관은 “옥상에 설치된 가정용 태양광 발전기 등 재생에너지 증가와 온화한 겨울 날씨가 전력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AEMO는 2025년까지 가정용 태양광이 국가전력시장(NEM) 기본 수요의 77%를 충족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다니엘 웨스터먼 AEMO CEO는 “호주의 에너지 시스템은 탈탄소화되고 분산된 전력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다”며 “2025년까지 모든 고객 수요가 재생가능한 발전으로 충족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호주가 전통적인 전력 발전이 어떻게 전환되는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정성과 공급망 관리는 과제
다만 너무 많은 태양광 발전은 전력 공급망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AEMO는 일반가정에 설치된 태양광 시스템에서 생산된 전기가 전체 전기공급망에 연결되면서 전압 레벨이 크게 저하되고 정전이 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SA주 전력 배급사인 파워네트워크는 너무 많은 에너지로 인해 시스템에 압력이 가해질 경우 모든 새로운 태양광 설비를 끄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기 위한 원자재 가격도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올해 초 두 배 이상 급등한 폴리실리콘 및 30% 이상 상승한 철광석 가격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품 가격 상승 압력이 커졌다. 하반기에는 신규 물량 공급으로 수급이 안정화되면서 가격이 진정됐지만 향후 늘어나는 수요에 따라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 개발 수요도 감소할 수 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