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어려워진 자영업자에 정책자금은 되레 독 될수도

입력 2021-11-03 04:07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영업자 대출이 급증하는 가운데, 정부의 저금리 대출 정책이 자칫 자영업자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지적이 제기됐다. 자영업자들을 일종의 ‘좀비기업’으로 만들어 신용 고통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일 ‘자영업자 부채의 위험성 진단과 정책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오윤해 KDI 시장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일단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면서 자영업자의 신용위험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매출 감소가 장기화되고 부채가 급증한 영향이다.

실제 지난 8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총 988조5000억원으로 2019년 12월 말 대비 173조3000억원(21.3%) 증가했다. 업종별로 보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음식·숙박, 예술·스포츠·여가 등 주요 대면서비스업의 대출 증가율이 비교적 회복세가 빨랐던 제조업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개인사업자가 보유한 가계대출과 사업자 대출은 은행보다 고금리업권에서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총량관리 등으로 은행권의 자금 공급이 제한되면서 개인사업자의 고금리업권 대출 증가세는 더욱 가팔라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코로나로 인해 매출 감소 등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을 실시하고 있는데, 오 연구위원은 이같은 지원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긍정적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 연구위원이 2016~2017년에 지급된 정책자금을 분석한 결과, 정책금융을 수혜한 개인사업자는 저금리 자금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폐업이 축소되고 매출과 고용인원이 확대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이 관찰됐다.

반면 정책금융 지원 직후 폐업한 사업체 대표의 개인 신용도는 오히려 악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정책 금융 지원 시점 1년 후 폐업한 사업체를 표본으로 한정해 분석했더니, 오히려 비수혜업체보다 신용도가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정부의 ‘묻지마’ 저금리 대출 지원이 오히려 자영업자에게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 연구위원은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것이 아닌 경영 악화가 심화된 업체에 정책자금을 공급할 경우 오히려 채무가 가중돼 사업주의 개인 신용이 악화될 수 있다”면서 “이는 폐업·재기 지원이 사업주에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경영이 악화한 자영업자는 적절한 시기에 폐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