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선 “석유 증산” 영국선 “청정에너지”… 바이든의 모순

입력 2021-11-03 04:02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COP26에서 청정에너지를 강조했지만 불과 며칠 전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선 “석유 증산 필요하다”는 상반된 발언을 했다. UPI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미국의 기후변화 약속은 말이 아닌 행동”이라며 “개발도상국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보다 며칠 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석상에선 “지금은 중동 러시아 등 산유국의 석유 증산이 꼭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청정에너지’와 ‘석유 증산’은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말이다.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석유는 바이든 대통령의 구별법에 따르면 ‘더러운’ 에너지’다. 중국산 철강이 화석연료로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이유로 더러운 철강이라 했기 때문이다. 산유국에 석유를 더 생산하라고 압박한 일은 그가 주도하는 글로벌 친환경 청정에너지 정책에 정면으로 반하는 요구인 셈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이 두 가지의 모순을 지적하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 스스로 생각해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석유 증산 메시지를 던진 이유는 세계 경제를 뒤덮고 있는 에너지 대란과 고유가 발 인플레이션 공포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를 넘어 세계 각국이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자 그동안 움츠렸던 경제의 각 영역은 수요 폭발로 상승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팬데믹 사태로 위축됐던 중공업 경공업 화학공업 전자공업 물류산업 등은 이런 수요를 감당해낼 수 없는 공급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경제의 3분의 2를 움직이는 미국, 유럽연합(EU), 동북아 3개국(한·중·일)은 하나같이 에너지 대란과 인플레이션 위기에 휩싸여 있다.

당장 이 위기를 잡을 수 있는 타개책은 산유국들의 석유 증산 밖에 없는 실정이다. 석유 자체가 에너지 공급원이자 각종 첨단 공업제품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중적 태도는 비단 그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면서 “현재가 탄소배출을 줄여야 환경재앙을 막을 수 있는 친환경의 시대이자, 여전히 경제의 밑바탕인 상품생산은 화석연료로만 돌아가는 공업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선진국 진영이 제시한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 목표치에 중국은 물론 러시아, 인도, 개발도상국들이 강력 반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딜레마 때문으로 해석된다. 무조건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라는 선진국의 요구는 개도국에게는 현재의 경제발전을 전부 포기하라는 강압으로 받아 들여진다.

NYT는 “결국 G20 정상회의와 COP26이 공허한 선언과 미사여구로만 끝나버린 것은 친환경과 경제개발이란 동전의 양면이 서로 충돌하는 현대의 모순을 잘 보여준 셈”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양자 사이에 어떤 균형을 취할 지에 따라 세계경제는 물론 국제정치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