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깨진 항아리가 정말 보물단지입니다.”
2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인사동 출토 유물 공개전’ 전시실. 학예사는 들머리 진열장에 놓인 깨진 도기 항아리를 한껏 강조했다. 지난 6월 서울 인사동에서 발굴한 조선시대 유물 1775점이 5개월 만에 일반에 공개되기 하루 앞서 언론에 선보이는 자리에서다.
항아리 안에는 조선 전기에 제작된 갑인자(1434) 을해자(1455) 을유자(1465) 등 금속활자 1600점이 묻혀 있었다. 항아리 주변에선 세종∼중종 때 제작된 물시계 부품 주전(籌箭)과 세종 때 만든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만들어진 총통류 8점, 동종 1점 등의 금속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유물들은 430여년 전 중인 신분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전란을 당해 피란 가며 급히 묻은 듯한 형색이 역력한 채로 출토됐다. 당시 고가였던 청동 총통을 일부러 분질러서 보관한 게 그랬다.
이번 전시는 당시의 정황을 걷어내고 유물 자체의 본모습과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친절하게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출토된 금속 활자 중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인 세종 당시의 갑인자가 다량 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로 평가됐다. 이를 포함한 활자의 세계가 전시 1부에서 펼쳐진다. 핵심인 갑인자를 유리판을 통해 앞뒤로 볼 수 있게 했고, 을해자와 이것으로 찍은 ‘능엄경’(1461년·보물), 을유자와 이것으로 찍은 ‘원각경’ 책자를 나란히 놓아 활자가 활용되는 방식을 비교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곳곳에 설치된 확대경으로 활자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고 조선시대 활자 주조를 담당했던 ‘주자소 현판’도 볼 수 있다.
2부에선 ‘일성정시의와 조선전기 천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알려주는 유물을 소개한다. 일성정시의는 1437년(세종 19년) 국왕의 명으로 처음 제작된 주야겸용 시계로 중국에서 전래된 혼천의와 간의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크기를 소형화했다. 낮에는 해의 그림자로, 밤에는 별을 관측해 시간을 측정하던 기구인데 기록으로만 확인되다가 처음으로 실물이 출토됐다. 비록 3개의 고리 중 한 개는 일부만 출토됐지만, 다행히도 전체 모습은 알 수 있다.
일성정시의의 사용 방법을 알 수 있도록 박물관 소장품인 소일영(小日影)을 나란히 전시했다. 해시계인 소일영은 눈금표가 새겨진 둥근 고리와 받침대, 석제 받침대로 구성돼 있는데, 전체를 한꺼번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직사각형 모양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자동 물시계 부속품인 일전(一箭)도 볼 수 있다. 자동 물시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인형이 있는데, 일전은 그 인형을 작동시키는 구슬을 방출하는 부품이다. 일전이 자동물시계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를 담은 영상도 공개된다.
제작 연대가 확실한 1점의 승자총통(1583년)과 7점의 소승자총통(1588년)도 전시된다. 이 총통에는 제작한 장인의 이름, 제작 연도, 총통의 무게와 화약량 등이 기록돼 있다. 제작 연도(1535년)가 적힌 동종 파편과 정륭원보, 조선통보 등 금속화폐도 만날 수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