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성 목사의 하루 묵상] 배가 필요한 이유

입력 2021-11-03 03:06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은 폴란드계 유대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으로 도피했다 다시 폴란드로 돌아와 바르샤바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그러나 반유대 운동의 희생양이 되면서 교수직을 잃고 영국 리즈대로 자리를 옮겨 제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유럽의 사상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사상가입니다.

그가 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한국어로 번역돼 있습니다. 원제목은 ‘유동하는 현대 세계에서 보내는 44통의 편지’입니다. 그는 오늘의 세계를 ‘유동한다’고 봤습니다. 유동한다는 건 계속 흐르고 움직이는 걸 의미합니다.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집니다. 아침의 정보가 낮이 되면 옛것이 됩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부족해 어려웠는데, 이제는 많은 정보 중 옳고 유용한 걸 골라내는 게 힘듭니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던 것도 변합니다. 예전에는 혐오스럽게 여겨지던 게 이제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모든 게 유동하며 흐릅니다.

유동하는 세계에서 사는 건 혼란스럽습니다. 민첩하고 대처가 빠른 사람은 유동하는 세계에 자신을 맡깁니다. 마치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유동하는 세계에 자신을 맡깁니다. 그는 변신의 명수입니다. 새로운 정보에 재빠르게 대처하고 늘 첨단을 걷습니다. 그러나 그를 믿으면 안 됩니다. 잠시 후면 그는 또 다른 유행을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절대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상황에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의 소원은 땅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땅에 서는 순간 안도합니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물에서 깊이 빠져들지만, 땅은 안전하다고 생각해 안심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당혹감이 그와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의 진리는 땅과 같습니다. 그는 그 땅 위에 서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사랑으로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통한 은혜의 구원에 감격합니다. 성령 안에서 성도로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며 삽니다. 세상이 다 무너져도 복음의 진리만은 요동하지 않는 걸 믿습니다. 이 진리는 반석처럼 자신을 받쳐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복음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기독교 진리가 상대화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바우만은 유동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안에서도 진리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마치 강에서 배를 타는 것과 흡사합니다. 강물을 따라 내려가기는 하지만 자신을 물에 맡기지는 않습니다. 그는 배에 타고 있습니다. 배는 흔들리기는 하지만 그가 물에 빠지지는 않게 하고, 때로는 물을 거슬러 오르도록 돕기도 합니다. 배는 강물의 위험으로부터 그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수단입니다.

복음의 진리는 그리스도인이 타야 할 배입니다. 그 배는 아무리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도 그리스도인을 지켜 줄 것입니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대, 그리스도인이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할 것은 복음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세계는 유동하고 흔들리더라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배에 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배를 통해 목적한 항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