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자마자 당내 핵심 요직인 간사장에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을 내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의 대화에 소극적이었던 모테기 외무상이 집권 자민당의 2인자 자리인 간사장이 될 경우 한·일 관계 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교도통신과 마이니치신문은 1일 기시다 총리가 아마리 아키라 간사장의 후임으로 모테기 외무상을 내정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갑작스런 인선은 아마리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입헌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해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현직 여당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패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다만 그는 중복 출마한 비례대표 선거구에서 구제돼 가까스로 13선을 달성했다. TV아사히는 “이르면 4일 자민당 총무회에서 모테기 외무상의 간사장 임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일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인 상황에서 당내 2인자인 간사장마저 ‘강경파’인 모테기 외무상이 내정된다면 한·일 관계는 당분간 험로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모테기 외무상은 강창일 주일대사와의 면담을 사실상 거부했고, 정의용 외교장관의 연락에도 뒤늦게 반응하는 등 한국과의 소통에 극도로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기시다 총리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의 당사자다. 또 이번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가 현재(11석)의 3배가 넘는 41석을 얻은 점도 한·일 관계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편 자민당 내에서는 이번 2차 내각 인선을 계기로 ‘세대교체’를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총무성 선거 개표 결과 자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465석 중 261석을 확보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절대안정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아키라 간사장 외에도 당내 중진들이 연달아 지역구에서 고배를 마셨다.
도쿄 8구에서는 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간사장이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이시하라 전 간사장은 30년 동안 이 지역구를 독점했지만 석패율 기준인 80%에도 미치지 못해 낙선이 확정됐다. 동생 히로타카 역시 도쿄 3구에서 낙선했다.
이밖에도 지바 8구에서는 사쿠라다 요시타카 전 올림픽상이 첫 출마한 민주당 후보에게 5만표차 이상 격차를 내줬다. 사쿠라다 전 올림픽상은 2016년 일본군 위안부를 ‘직업적 매춘부’라고 부르는 등 일본 정계에서도 ‘망언 제조기’로 불린다.
반대로 기시다 내각에서 배제된 인사들은 대승을 거뒀다. 고노 다로 자민당 홍보본부장은 지역구에서 77% 득표율로 승리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도 개표 2시간 만에 당선이 확정됐다.
기시다 총리는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라는 민의를 긴장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엄중한 문책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