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황산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는 기도회는 2019년 1월 시작됐다. 산황산이 있는 경기도 고양 지역의 교회 5곳이 기도회를 주최하는데, 이들 교회는 한동안 매주 목요일 기도회를 열다가 코로나19가 확산된 뒤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기도문을 올리는 것으로 행사를 갈음하고 있다.
현재 고양시청 인근에서는 환경단체들이 중심이 돼 텐트 농성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도 교회들은 힘을 보태고 있다. 목회자나 성도들은 자신이 ‘텐트지기’ 순번이 되면 텐트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렇듯 어기찬 골프장 증설 반대 투쟁에 가담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가 고양 덕양구에 있는 동녘교회(김경환 목사)다. 그런데 이 교회는 무슨 이유에서 골프장 증설에 반대하는 걸까. 김경환(53) 목사는 “더 이상 녹지가 훼손돼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골프장을 증설하면 산황산의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게 돼요. 골프장 인근에 있는 정수장도 오염될 가능성이 커요. 알다시피 골프장엔 농약을 많이 치잖아요. 지하수가 오염되고 삼림도 피해를 보게 됩니다. 골프를 즐기는 소수를 위해 많은 시민이 이런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까.”
동녘교회를 찾은 건 지난달 25일이었다. 교회는 다양한 상가가 벌집처럼 입주해 있는 덕양구의 한 상가 건물 4층에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214㎡(약 65평) 크기의 공간이 등장했다. 신발을 벗고 모든 교인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으로 안락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교회 입구에 마련된 ‘나눔터’라는 작은 공간이었다. 나눔터에는 신발이나 옷가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붙은 A4 용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곳은 무료 나눔터입니다. 누구나 안 쓰시는 물건을 가져다 놓으실 수 있고 필요하시면 누구나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너무 낡은 것은 사양합니다. 누가 사용해도 기분 좋은 물건을 나누어주세요.”
성도들은 주일마다 자신에겐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겐 쓸모가 있을 물건을 나눔터에 내놓는다고 했다. 김 목사는 “현대인들은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려 한다. 소비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삶을 사는 게 기후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나눔터는 교회 울타리 바깥으로도 확장됐다. 동녘교회는 그간 교회 인근에서 물물교환 장터를 열곤 했다. 아이들이 자신의 물건을 주고받는 이른바 ‘돌돌이 장터’도 개최했었다.
나눔터 외에도 이 교회에서 벌이는 사역 중엔 주목할 만한 게 수두룩했다. 덕양구 화정동에 있는 ‘공동체 텃밭’이 대표적이다. 991㎡(약 300평) 규모인 텃밭에는 고구마와 감자 등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다.
교인들은 매년 봄이면 이곳에서 파종 예배를 드린다. 텃밭에선 틈틈이 어린이생태체험교실도 열리곤 한다. 평소에는 김 목사와 일부 교인이 농사일을 도맡지만, 밭을 갈거나 작물을 수확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 거의 모든 성도가 텃밭으로 달려간다. 김 목사는 “목회의 원칙을 굳이 꼽으라면 경천존지애인(敬天尊地愛人)일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이웃을 사랑하라고 적혀 있는데, ‘이웃’의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저는 자연도 인간의 이웃이라고 생각해요. 하늘을 바라보면서 땅을 존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그런 일의 일환으로 텃밭을 운영하고 있어요. 함께 농사를 지어서 수확물을 나눔으로써 경천존지애인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서 대화는 김 목사의 생태 철학에 관한 이야기로 뻗어 나갔는데, 간추리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인간을 포함해 자연에 기대어 사는 모든 것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연결돼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자연의 혈관을 타고 순환한다.
이것인 바로 하나님이 만든 생명의 질서라는 게 김 목사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연결과 순환’이라는 생태 키워드는 동녘교회에서 벌이는 모든 일을 관통하고 있다.
가령 설교만 하더라도 김 목사가 강대상에서 일방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형태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성도들이 순환하듯 돌아가며 설교에 참여하는, 이른바 ‘무지개 설교’가 진행되곤 한다. 무지개 설교 주인공이 된 성도는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고 성도들은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는다. 김 목사는 “공동체의 생태계도 자연의 생태계와 다를 게 없다”며 “개인의 개성이 모여 다양성을 이루고, 이런 다양성이 공동체에서 활성화될 때 교회 역시 건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녘교회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에는 ‘자연은 제2의 성서’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자연의 시스템에서 세상과 교회가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김 목사는 “교인들과 농사를 지으면서 흙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흙에는 인류의 역사와 자연을 거쳐 간 모든 생명이 담겨 있더군요. 흙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 모든 생명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뭔가를 수확하기까지 인간의 노동이 기여하는 건 10분의 1도 안 되더라고요. 창조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곤 합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양=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