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달라진 마블 시리즈의 서막이 올랐다. 유머보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관객에겐 도심에서 펼쳐지는 요란한 액션보다 사막, 화산, 해안 절벽 등 압도적 스케일의 대자연이 잔상으로 남는다.
3일 개봉하는 마블의 새 영화 ‘이터널스’가 지난 28일 언론에 공개됐다. 한국인 최초로 마블 히어로의 일원이 된 배우 마동석과 할리우드 톱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조합,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와 마블의 만남이 팬들의 기대를 높였다.
기원전 5000년, 우주선 ‘도모’를 타고 지구에 도착한 불멸의 히어로 이터널스가 지적 생명체를 죽이는 적 데비안츠를 물리친다. 10명의 이터널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부터 바빌론·아즈텍·굽타 제국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발전을 막후에서 돕는다.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던 이터널스는 사라졌던 데비안츠가 모습을 드러내자 다시 모인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오락성이 강한 이전의 마블 시리즈를 좋아했다면 긴 서사와 캐릭터 간 갈등, 철학적 고뇌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블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와 세계관이 흥미로울 수 있다.
자오 감독은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상 외에 제78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 및 감독상,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주인공의 여정과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그의 연출 스타일은 마블 영화에도 녹아있다.
자오 감독은 ‘블랙 위도우’ 외엔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마블 세계에 동양계 여성 리더를 등장시켰다. 인종과 성별, 장애인 등 다양성을 반영한 이터널스의 구성은 자오 감독다운 선택이다.
‘마블리’ 마동석이 표현한 길가메시의 강인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국내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창과 방패의 여전사 테나(안젤리나 졸리)와 케미도 기대 이상이다.
자오 감독은 29일 국내 취재진과 가진 온라인 간담회에서 “영화는 거대한 우주적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서로 맞지 않는 특이한 가족의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물음을 던지는 형식을 취한다”며 “내 영화는 항상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지만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뭐냐’고 묻는다면 사람 간의 공감 능력, 사랑을 선택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라고 답하겠다. 그런 부분이야말로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우 마동석에 대해선 “영화 ‘부산행’ 등에서 보여준 액션뿐만 아니라 유머나 카리스마도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은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다. 인생을 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길가메시 역을 수락했을 때 만세를 불렀다. 손바닥으로 상대를 때리는 ‘마동석표 액션’은 헌사의 의미로 영화 속에 일부러 넣었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