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에 개신교 목사들이 참석한 것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군사 쿠데타와 광주 학살에 관여하는 등 과오가 분명하고, 또 국가장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 굳이 영결식에 참석했다면서 말이죠.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 목사는 지난 30일 노 전 대통령 국가장에 참석해 기도 순서를 맡았는데요. 일부 에큐메니컬 진영에선 ‘쿠데타 주범을 애도했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NCCK는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왔는데요. 이번 국가장 참석은 그간 NCCK가 걸어온 길과 정반대되는 행동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짚고 갈 부분이 있습니다. 국가장은 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 이렇게 4대 종교가 종교의식을 진행합니다. 이 목사의 참석은 국가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NCCK가 교계의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원래 NCCK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첫 연합기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목사 역시 국가장 ‘참석’을 두고 고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NCCK 한 관계자는 “이 총무가 많은 고민 끝에 궁극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기도문을 준비했다고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자리에 굳이 나선 건 그것이 진짜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장례에 강신명 당시 새문안교회 목사가 참석했습니다. 교회 일치 운동에 힘썼던 강 목사 역시 지금의 이 목사처럼 기도 순서를 맡았습니다. 그는 기도 전 성경 말씀을 읽었는데요. 갈라디아서 6장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선을 심으면 선을,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둔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영결식 후 참석 행위보다 그가 전한 말씀이 회자됐죠.
이 목사도 본인의 참석 여부보다 기도문 내용에 관심을 갖길 바랐을 겁니다. 밤새 기도하며 기도문을 썼다고 합니다. 이 목사는 기도문에 고인에 대한 추모 대신 추념이란 말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이 땅의 민중들이 펼친 주권재민의 역사, 특별히 10·26사태와 12·12군사반란,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 등 지속되는 신군부세력의 폭정에 맞선 민중의 투쟁 속에 담긴 고난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과를 언급하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전두환씨를 비롯한 집단 살해 주범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 목사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지금 그가 듣고 있는 비난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화해와 용서, 일치를 내세우는 NCCK의 가치 역시 퇴색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목사의 기도문 제목은 ‘용서와 화해의 기도문’이었습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