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식 후 건강해졌다고 술 입에 다시 대면 기능 악화”

입력 2021-11-01 20:20
이화여대목동병원 홍근 교수(오른쪽 두 번째)를 비롯한 의료진이 간 이식을 받은 후 추적 관찰을 위해 병원을 찾은 60대 여성의 건강상태를 물어보고 있다. 이화의료원 제공

얼마 전 종영된 tvN 의학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재미와 감동을 넘어 장기 이식에 대한 국민 인지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계 기관에 따르면 드라마 한 편이 방영된 다음 날 장기 기증 서약자가 400여명 늘 정도로 반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간 이식을 하는 대학병원의 젊은 교수로, 실제 모델이 된 의사가 있다. 이화여대목동병원 홍근(48) 간담췌외과 교수다. 홍 교수는 2017년 가을부터 방송사 제작진과 장기 이식을 테마로 하는 드라마를 준비하며 의학 자문을 맡아왔다고 한다. 드라마의 소재나 내용은 대부분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었다.

홍 교수는 1일 “여느 의학드라마와 다르게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장기 이식을 받고 얼마나 좋아지는지, 그들이 장기 기증자에게 얼마나 감사하는지를 잘 표현했다”면서 “에피소드를 모아서 교육에 쓸 정도로 현실을 잘 반영한 드라마다”고 평했다.

그는 “의학드라마는 의사들이 잘 안 보는데, 동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고 해 놀랐다”고도 했다. 또 “뇌사자가 발생해 장기 기증 얘기를 꺼내면 이전엔 가족들이 화를 내거나 시큰둥했는데, 드라마 이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는 분들이 많아져 보람을 느낀다”며 뿌듯해 했다.

홍 교수는 간 이식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오해를 바로잡는 기회가 된 점도 성과로 꼽았다. 장기 이식은 ‘첨단 의학의 꽃’이자 외과 수술의 ‘최정점’으로 불릴 만큼 수술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다. 특히 간 이식은 다른 장기에 비해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매년 1500여건이 이뤄지는 간 이식은 뇌사자 이식과 가족 등의 간을 기증받는 생체 이식이 있다. 한국에선 생체 간 이식이 70~80%를 차지한다.


뇌사자 이식의 경우 기증자의 사망을 전제로 수술하기 때문에 간 전체와 혈관, 담관(간에서 분비되는 쓸개 관)을 최대한 길고 크게 절제해 환자에게 옮겨다 붙인다. 반면 생체 이식은 기증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기증자가 합병증 없이 건강을 회복하려면 간과 혈관, 담관의 일부를 밀리미터(㎜) 단위로 정교하게 떼내야 한다. 홍 교수는 “떼낸 간 일부를 수혜자 몸에 넣고 연결할 때도 뇌사자 간에 비해 혈관, 담관이 작고 가늘기 때문에 더 세밀하게 수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부 대형병원에서 간 이식에 상처를 최소화하는 복강경 수술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혈관이나 담관 등의 구조는 개인마다 달라서 복강경 수술을 안전하게 할 만한 환자를 엄격히 선별해야 하고 특히 기증자에게 복강경 수술을 시도하는 것은 아직 조심스럽다는 게 홍 교수의 의견이다.

또 60세 이상 고령 기증자에 의한 생체 간 이식은 되도록 시행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고령 자체가 외과 수술의 위험 요인이기 때문. 다만 뇌사자 장기 기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령의 기증자밖에 없는 경우 기증자의 건강 상태와 의지 등을 고려해 드물게 생체 간 이식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홍 교수는 국내 최고령인 75세 기증자의 생체 간 이식에 성공한 바 있다.

홍 교수는 이대목동병원에서 98개 사례를 포함해 지금까지 600례 가까운 뇌사자·생체 간 이식을 집도했다. 이식 후 1년 생존율 90%, 5년 생존율은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간 이식 대상이 되는 질환은 B·C형 간염에 의한 간경화, 간암, 알코올성 간경화 등이다. 근래 과도한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간염이 간경화로 악화돼 간 이식을 받는 사례가 느는 추세다. 하지만 뇌사자 부족 등으로 간 이식 대기자는 한해 6000여명에 달하고 매년 1000명 정도가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장기 기증에 대한 국민 관심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홍 교수는 “간 이식은 다양한 말기 간 질환자가 완치될 수 있는 획기적 치료법으로 수술 기법, 약물의 발전으로 성공 가능성도 매우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기회를 잡아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보다 많은 간 질환자가 장기이식센터를 방문해 간 이식 상담 및 등록을 하고 관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간 이식 후 건강관리가 중요한데, 특히 감염에 주의해야 한다. 집안은 되도록 건조하게 유지하고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 사람 많은 곳을 갈 때는 꼭 마스크를 써야 한다. 열이나 구토 등 몸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 와서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담 코디네이터 연락처를 꼭 지니고 있는 게 좋다.

간 이식 환자들은 술과 담배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홍 교수는 “술 마신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간 이식 후 건강해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술을 입에 다시 대면서 간 기능이 악화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주변 혹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간에 좋은 음식이나 약은 의료진과 꼭 상의한 뒤 섭취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