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사람은 ‘人(인)’입니다. 둘이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입니다. 하나님도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입니다. 성경은 혼자 고립되는 것에 대해 우려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 후 여자를 만든 배경도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봤기 때문입니다.(창 2:18)
왜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넘어졌을 때 일으킬 자 없고”(전 4:10) “추울 때 따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전 4:11) 그래서 성경은 믿음 생활을 할 때 항상 ‘혼자’가 아니라 ‘둘’을 강조합니다. 전도도 두 명씩(막 6:7) 하고, 예수님도 함께 일하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막 3:14)
어떤 사람은 “혼자 사는 사람 많다” “바울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것과 혼자 고립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혼자 살아도 함께 사는 사람이 있고, 혼자 살면서 완전히 고립되는 예도 있습니다. 고립되면 위험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광야로 도망가 차라리 죽여달라고 합니다. 위로할 사람 없이 세상에서 “나만 남았다”는 것입니다.(왕상 19:10)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지만 고립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이 쓴 성경을 보면, 항상 마지막 부분은 안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혼자 고립됐습니까. 혼자 살아도 같이 삽니까. 절망의 순간에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삽니다. 하나님은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갈빗대는 서로 기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슴으로, 따뜻한 심장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가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가슴 언어’입니다.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통하고, 인생관이 통해야 합니다. 통하지 않으면 마찰이 생기고, 비위를 맞추려면 피곤합니다.
어떻게 가슴으로 통하는 사람을 찾아야 할까요. 성경에 화목제가 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제사장, 이웃들과의 화목을 위한 제사입니다.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지도자, 동료 세 분류와 잘 지내야 합니다. 화목제는 먹습니다. 고기 중 기름과 내장은 하나님께 드립니다.(레 3:3) 가슴과 뒷다릿살은 제사장에게 줍니다.(레 7:31~32) 나머지는 부위는 이웃을 초청해서 그날 먹었습니다.(레 7:16) 먹으면 친해집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차이는 바리새인들은 분리되고, 따로 놀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였습니다. 같이 밥을 먹었습니다.(막 2:16) 당시 예수님의 ‘밥상 목회’는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초대교회는 밥상공동체입니다. 한국 밥상은 함께 먹는 구조입니다. 밥을 함께 먹으면서 정이 쌓이고, 공동체 의식이 생깁니다. 밥상 공동체가 무너지고 ‘혼밥’ 문화가 생기는 것은 한국사회 미래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좋은교회, 건강한 교회는 밥상이 살아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 고립돼서는 이기지 못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함께 이겨내야 합니다. 밥을 같이 먹어야 합니다. 먹으면서 힘내자고, 도닥거려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이웃을 초청해 밥을 사야 합니다. 따뜻한 밥, 생명의 밥, 복음의 밥을 나눠 먹어야 합니다. 주변에 혼자, 고립된 사람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말이 아닌 진심으로, 가슴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한 갈빗대가 돼 줘야 합니다. 둘이 아닌 한 몸이 돼야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 교회도 나아가 대한민국도 코로나 시국에 살아남습니다.
신동철 목사
◇순복음이레교회는 충남 아산시에 있으며, 매주 금요일 온양온천역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의 점심을 대접하는 ‘해피데이’ 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봉사, 홀몸노인 반찬 나눔, 북방선교 등 나눔과 선교에 앞장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