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통해 보여주는 인간 사회

입력 2021-10-31 20:27
원성원 사진 작품 '잘 다듬어진 유년'(부분), 2021, C-프린트.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황량한 산에 잘 다듬어진 어린 소나무 분재들이 심어져 있다. 양옆에는 선생님 같은 큰 소나무가 있다. 낯설면서도 낯익은 풍경이다.

원성원(49) 사진작가가 숲 생태계를 통해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신작들을 내놨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들리는, 들을 수 없는’에서다. 작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를 의인화해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여러 유형의 관계를 보여준다. ‘잘 다듬어진 유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상류층 자녀를 연상시킨다. 처음부터 잘 다듬어진 이들은 커다란 소나무로 상징되는 문화자본을 수혈받으며 사회의 중심으로 쑥쑥 자랄 운명이다. 원 작가가 나무를 통해 보여주는 인간 사회는 사회의 리더들, 왕따 당한 주변인들, 성공한 사람들 등 다양하다. 이를테면 ‘무게를 입은 빛’은 나무에 주렁주렁 샹들리에가 걸려 있어 성공한 사람들이 느끼는 왕관의 무게를 은유한다.

작가의 작업은 사진 콜라주다. 숲에서 찍은 수천 장의 사진을 오리고 콜라주해서 포토숍 프로그램으로 처리해 실제 사진 같은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사진 작품은 현실에 바탕을 둔다. 주변인을 관찰하고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에 착안한 작가는 나무를 통해 기시감이 드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마치 이미지의 언어로 쓴 단편 소설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는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와 쾰른 미디어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모리미술관, 미국 산타바바라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11월 13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