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들다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창조 과정이 연상됩니다. 그냥 흙을 이리저리 만지다 작품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고 나서야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이미지의 형상화가 창조로 이어지는 겁니다. 흙 작업을 하다 보면 오로지 진화로만 이 세상이 만들어질 수 없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30년 검사 생활, 2009~2011년 검찰총장 역임, 대형법무법인 변호사 경력의 김준규(66) 온누리교회 장로는 이제 자신을 ‘흙작가’로 불러 달라고 말한다. 흙을 가지고 입체 모형의 조소를 만들고 이를 구워내는 흙작가. 권력과 부와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흙 그 자체가 좋아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김 장로를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갤러리에서 만났다. ‘흙을 만지며 다시, 나를 찾다’(채문사)란 책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김 장로는 하용조 목사와 성경공부를 함께한 인연으로 2000년 온누리교회에 등록했다. 40일 특별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기 위해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로 이사했다. 2011년 하 목사 별세 이후 이재훈 목사에게 장로 장립을 받았다. 2020년 어부가 낚시를 생업으로 매일 하듯, 취미가 아니라 생업으로 흙을 만져 조소를 만드는 직업을 택했다. 지난 1년 6개월간 만든 40여 작품 가운데 간음한 여인 앞의 예수 그리스도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 장로가 설명을 이어갔다.
“안 믿는 분들도 다 아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요한복음 8장 말씀의 모습입니다.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의 야하면서도 넋 빠진 모습, 예수님은 성경 그대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흙으로 이 손끝을 표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서양의 그림들은 예수님이 서 있고 여자가 엎드려 있지만, 성경 원문은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기 직전입니다.”
누가복음 2장의 성전에서 발견된 소년 예수, 기도하는 손, 탕자의 귀환 등의 장면을 흙으로 빚고 불로 구워냈다. 무릎 꿇고 오른쪽 팔을 들어 기도하는 하용조 목사의 모습은 특별히 두란노서원의 대표 이형기 사모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하 목사가 신년기도회 때 한복을 입고 등장해 한 손을 들고 ‘할렐루야~’ 인사하는 부조도 제작됐다. 김 장로는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 책과 새벽기도 묵상을 통해 내려놓음을 배웠다고 했다.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텐데, 그때 제가 ‘검사되고 검찰총장도 하고 열심히 살았어요’하면 하나님이 ‘쯧쯧쯧’하고 혀를 차실 것 같았어요. ‘네게 이런저런 달란트를 줬는데 묻어만 뒀느냐’고 책망하실 거 같았죠.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전환하자고 생각하고 즉각 실행에 옮겼습니다. 고교 때부터 재능을 일부 인정받은 조소 작가가 된 이유입니다.”
호탕한 성격의 김 장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 그림 관객의 뒤바뀐 손 모양처럼, 실수인지 암수인지 작가만 아는 수수께끼를 작품에 삽입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가 실수를 숨겨둬 보는 사람들이 찾고 웃음을 자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재밌는 대화를 풀어가기 위한 예술. 그걸 추구했다.
김 장로는 “가깝게는 장로 사역을 잘 마무리하고 싶고, 바라옵기는 작품 속에 나타난 믿음과 신앙을 보는 분들이 같이 봐주시고 감동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