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1899년 이미 세계적 작가가 된 레프 톨스토이가 말년에 쓴 소설입니다.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같은 장편 대하소설을 10여년 간격을 두고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필립 얀시가 ‘내 영혼의 스승들’에서, 도로시 데이가 ‘고백’에서 톨스토이의 ‘부활’의 항구적 신앙적 감화력을 증언합니다. 1828년생인 톨스토이는 50세가 되던 해 러시아 모스크바 빈민가를 견학하면서 정신적 충격에 빠집니다. 이후 아버지로부터 받은 백작 영지 야스나야 폴라나에 민중계몽학교를 세워 민중교육에 뛰어듭니다. 그는 제도권 러시아 정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실망한 나머지, 성경과 러시아 민중적 박애주의와 협동정신 안에서 기독교의 본래적 영성을 탐구하고 기독교 신앙의 생명력을 경험했습니다.
‘부활’은 두 가지 이유로 애독하는 기독교 고전이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정화된 양심을 증언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네흘류도프 공작은 자신의 죄책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급진적으로 회개하고 손해를 무릅쓰며 돌진합니다. 거듭난 양심의 생동감을 증언합니다. 자신이 젊은 날 성적으로 유린했던 고모집 하녀 카츄사가 창녀로 전락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중형에 처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범한 악행의 순간으로 되돌아가 거기서부터 자신의 인생을 교정하려고 분투합니다. 시베리아 유형지 근처 여관에서 산상수훈을 읽으며 양심을 회복하는 네흘류도프 공작에게서 회개하는 인간의 전형을 봅니다.
둘째 주인공 네흘류도프 공작의 회개는 심성 변화뿐 아니라 그의 사회경제적 개종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부활’은 사회소설입니다.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카츄사를 통해 억울하게 고소당해 형벌을 받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탄원을 듣고 사회적 개종을 맛봅니다. 빈민과 소작농 등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중심으로 당시 사회를 분석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와 자신의 땅을 소작농에게 나눠줍니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약 30년 전에 쓴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이미 러시아 사회 문제의 핵심을 통찰했습니다. 주인공의 사회적 개종을 이끈 책은 성경에 뿌리박은 기독교 신앙 외에도 ‘부활’ 출간보다 한 세대 앞선 미국의 성경적 사상가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동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