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흑인, 여성… 끝나지 않은 상처의 기억 고통 넘어 사랑을 향하다

입력 2021-10-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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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눈망울처럼 슬프고, 그들의 치아 빛깔처럼 맑디맑으며, 재즈의 리듬처럼 애잔한 이야기들을 영적 치유의 메커니즘으로 풀어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란 소수인종이 겪는 아픔, 그중에서도 흑인 남성들에 의해 또다시 멸시당하는 흑인 여성들의 상처와 소외를 작품에 담았다. 그러나 단순히 여성의 고통을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화해 그리고 용서가 작품의 빛을 발하게 한다.


여성으로서는 일곱 번째, 흑인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토니 모리슨(1931~2019·사진)의 이야기이다. 그는 흑인이면서 여성이란 정체성을 절대 부인하지 않았으며 흑인 여성 작가라는 명칭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종 문제와 여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전혀 새로운 서술 방식을 구현했다. 특히 인류역사상 범죄 중 범죄인 노예제가 흑인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얼마나 오랜 세월 압제하고 유린했는지 작가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증언하려고 했다. 그의 사명은 ‘목격한 것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77년 ‘솔로몬의 노래’를 발표한 후, 한 방송국 토크쇼에서 작가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작가의 사명은 ‘증언’

“지금까지 말한 적은 없었는데 저를 늘 괴롭히는 것이 있어요. 그것은 넓은 시각으로 보면 작가로서 제가 해야 하는 일이고, 저는 그것을 ‘목격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무언가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면, 아니 지금 사라져서 다시는 되찾을 수 없게 되려는 순간이라면 누군가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우리의 지난 과거를 모른다면, 특히 우리 여성들, 흑인 여성들이 모른다면 이 세상 누가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는 재기억(rememory)이란 장치를 이용해 지난 세월 동안 흑인들의 베일에 가린 역사 속으로, 흑인들의 의식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기록된 사실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감히 기억할 수 없는 것들을 증언한다. 산문집 ‘보이지 않는 잉크’에서 이런 마음을 솔직하게 전한다. “작가가 하는 일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지요. 작가의 책임은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더 낫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게 너무 야심 차 보인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라도 하는 것이 작가의 일입니다.”


모리슨은 호소력 있고 생동감 있는 소설들에서 흑인의 복잡한 정체성을 다뤘다. 1970년, 푸른 눈과 금발이 미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미국 사회에서 한 흑인 아이가 겪는 소외감을 그린 ‘가장 푸른 눈’을 처녀작으로 발표하면서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미국 사회의 가치 규범과 윤리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술라’(73년)와 노예였던 과거를 잊고 자신들의 본래 모습을 찾아 나서는 흑인 남성의 이야기 ‘솔로몬의 노래’(77년)를 발표해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또 무조건 백인을 닮아가려는 미국 흑인 중산층을 혹독하게 비판해 충격을 던진 문제작 ‘검은 아이’(81년)에서 작가는 흑인의 정체성 확립과 백인들의 인종주의라는 잘못된 인습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의 작가 정신을 가장 잘 담아낸 ‘빌러비드’(Beloved, 사랑하는 사람)는 1987년 출간 당시 퓰리처상, 미국도서상, 로버트F케네디상 등 미국 소설에 주어지는 거의 모든 명예를 얻은 작품이다. ‘빌러비드’는 남북전쟁 직후 노예라는 삶의 굴레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어린 딸을 살해한 흑인 여성의 삶과 고통을 그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약성경 로마서 9장 25절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에서 제목을 인용한 이 작품은 한 흑인 여성의 역사다. 그가 바라본 노예제도는 과거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아직 끝나지 않은 현실적인 경험이었다. 노예제도라는 과거의 사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고통스러운 실제 경험을 어떻게 언어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탐구다. 그들의 고통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을 미국으로 끌려온 6000만명의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에게 헌정한다고 말했다.


장편 ‘재즈’(92년)는 1920년대 미국 할렘가를 배경으로 흑인 부부와 주변 인물을 통해 고통을 뛰어넘는 화해의 정신을 아름답게 그려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 작품으로 1993년 미국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며 “시각적인 힘과 시적인 표현으로 미국 현실의 본질적인 면을 생생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가 미국 사회에서 흑인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굴레를 동시에 극복했다는 데서 그 의미가 각별했다.


기억의 치유와 회복

그의 문학은 재기억을 통한 치유와 회복이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트라우마는 재기억을 통해 드러난다. 기억을 더듬고 상처와 마주함으로 트라우마의 근원을 찾기 때문이다.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의 이야기 또는 실제로 존재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서 정체성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히 모리슨은 ‘빌러비드’를 통해 상처 입은 인물들의 치유과정만이 아니라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역사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작품의 재기억 과정은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던 노예제도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과정이며, 인물들이 고통 속에서 치유하고 정체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이다.

이런 그에게 기독교는 중요한 심리적 토대가 됐다. 모리슨이 지향하는 기독교 신앙의 속성은 소유욕에서 벗어난 베푸는 사랑이었다. 다수의 작품에서 모리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의식에서 종교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초기 작품에는 사랑과 베풂의 기독교 정신을 위배한 기독교인들을 등장시켜 강하게 질타한다. 우리가 삶에서 의로움과 거룩함, 신실함과 사랑, 정의로 가득한 특징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의 마지막 소설 ‘신이여 이 아이를 도우소서’에선 기독교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는 인물을 통해 소유가 아닌 ‘존재 양식’의 신앙을 제시한다.


토니 모리슨은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의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친은 평범한 흑인노동자였다. 로레인교회 성가대원인 어머니의 찬송을 들으며 성장한 모리슨에게 성경은 단순히 독서가 아니라 인생이었다. 그는 1953년 흑인들의 하버드라 불리는 하워드 대학을 졸업하고 55년 뉴욕주의 코넬대학원에서 미국문학을 전공했다. 작가로 활동하며 프린스턴대에서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집필과 교육에 힘을 썼다.

그가 밝힌 작가의 사명에 다시 벅차오름을 느낀다. “저는 남과 다른 목소리가 지워질까, 쓰이지 않은 소설이 지워질까 두렵습니다. 그릇된 사람들의 귀에 들어갈까 봐 속삭이거나 삼켜야 하는 시들, 지하에서 번성하는 금지된 언어, 권력에 도전하는 수필가들의 묻지 못한 물음, 무대에 올리지 못한 연극, 제작이 취소된 영화 등이 지워지는 데 대한 불안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악몽입니다. 마치 온 우주가 보이지 않는 잉크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산문집 ‘검은 잉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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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