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체포영장 기각 이후 대면조사를 거치지 않고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이라서 피의자 방어권 보장 문제마저 거론될 전망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피의자로 입건했던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 있어서도 당분간은 차질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손 검사의 신병 확보는 애초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연루 여부를 밝힐 분수령으로 꼽혀 왔다. 공수처 역시 신속하게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해 본안 수사로 나아갈 계획을 숨기지 않았었다. 피의자 조사 없이 구속영장이 청구된 점에 대해서도 “이례적이긴 하나 전례가 있으며,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영장 청구 이후 법원의 기각 결정에 이르기까지 방어권 등 절차 문제가 거론된 점은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를 표방하던 공수처의 입장에서 씁쓸한 대목이다. 손 검사의 변호인은 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이후 “피의사실의 요지도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 “구속영장 청구 일자도 몰랐다”고 했다. 이날 대한변호사협회조차 공수처의 영장 청구가 임의수사의 원칙을 깬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었다.
‘1호 구속영장’ 기각 이후 정치권의 공수처 수사에 대한 여론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도 보인다. 이례적인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야권에서는 손 검사에 대한 영장 청구가 무리한 것이라는 시각이 컸다. 손 검사 측도 공수처가 대선경선 일정을 먼저 말했다는 문자메시지를 공개했었다. 의혹 제기가 계속될 때에도 손 검사는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고발장 및 첨부자료를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 저로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손 검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법조인은 없다. 언론에 의해 공개된 고발사주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공수처 수사 도중 이 사건의 제보자 조성은씨는 본인이 지난해 4월 3일 김 의원과 나눈 대화 음성파일을 복원했다.
조씨가 국민일보에 공개한 녹취록에는 김 의원이 “초안을 아마 저희가 일단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제가 (고발하러)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담겨 있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선거 일정과 함께 가는 수사”라는 말이 나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