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 창구 카드론도 DSR… 서민·자영업자 대출 ‘막막’

입력 2021-10-27 04:03

서울 강북구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는 A씨(60)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카드론(장기카드대출)으로 1500만원을 마련했다. 가게 운영이 잘 안 돼 생활비가 빠듯한 상황이었다. 자영업을 하며 이미 신용대출로만 1억원을 넘게 빌려 달리 융통할 곳도 없었다. 15%의 이자율과 매달 64만원씩 나가는 원금과 이자가 부담이지만 A씨에겐 카드론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A씨는 “금리가 높다는 걸 알지만 워낙 힘드니까 빌려다 썼다”며 “이것마저 막히면 없는 사람들은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신용불량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카드론에까지 적용하기로 하면서 서민과 자영업자 등 취약한 대출수요자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내년 1월부터 개인별 DSR을 산정할 때 카드론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한도를 책정할 때 카드론으로 빌린 돈까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카드론은 서민과 자영업자 같은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한다. 은행 대출보다 금리가 높지만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다. 길게는 2년까지 분할 상환이 가능해 생활자금처럼 돈이 꼭 필요한 경우 많이 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도 당초 DSR에 카드론을 포함하는 것을 내년 7월까지 유예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카드론의 빠른 증가 속도와 부실 위험을 고려해 적용 시기를 6개월 앞당겼다. 실제 카드론 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말부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 2.2%에서 같은 해 하반기 6.8%, 2021년 상반기 5.9%를 기록했다. 은행권 대출 관리가 강화되고 생계자금 수요가 늘어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은 “최근 카드론의 증가 속도 등을 고려할 때 취약한 대출수요자의 부실을 크게 심화시키는 뇌관이 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카드론 이용자 중 대다수는 2개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카드론 이용자 414만명 중 다중채무자 비율은 65%(269만명)나 됐다. 다중채무자 카드론 이용액도 약 24조8000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15.2% 늘었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정책국장은 “다중채무자 비중이 높아 나중에 (가계부채가) 문제 됐을 때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다.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5개 이상 다중채무자에게 카드론 대출을 제한하거나, 다중채무에 따라 이용한도를 차등하는 조치를 할 예정이다.

다만 소득이 낮고 현금 흐름이 불안정한 서민층과 자영업자는 돈줄이 막혀 곤궁한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세부 조건에 따라 달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카드론에 DSR 규제가 적용될 경우 대출 한도가 20%가량 줄어들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카드사보다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사금융으로 빠질 위험도 있다. 일부 대부업체는 이날 발표된 카드론 대출 제한을 근거로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객 유치에 나섰다.

신용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카드론 취급액이 최소 10% 이상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생활자금 등이 필요한데 대출을 못 받게 되면 조건이 열악한 업체에서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