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드문 ‘대면조사 없는 사전구속영장’… 속도전 의지

입력 2021-10-27 04:06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대구고검 검사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 23일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을 지낸 손준성 대구고검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하겠다”던 공수처의 ‘1호 구속영장’이었고, 한편으로는 법률가들조차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서나 전례를 찾는 ‘대면조사 없는 사전구속영장’이었다. 구속영장은 공수처의 속도전 의지로 풀이됐고, 야당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 역시 가시권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26일 손 검사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되는 중에도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시각이 제시됐다. 일단 체포영장이 기각된 직후 청구된 구속영장이라는 이례성에 주목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면밀하고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체포영장 기각) 3일 만에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공수처에 대해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명한다”는 논평을 냈다.

구속영장을 청구해 놓고도 이 사실을 영장실질심사 하루 전에야 피의자 측에 알린 부분은 형사소송법 위반 소지마저 있다는 비판도 있다. 공수처가 사건사무규칙으로 ‘원칙적 임의수사(동의를 얻어 행하는 수사), 최소한 강제수사’를 내걸었음에도 이번에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행보가 오히려 공수처의 자신감을 드러낸다는 시각도 있다. 체포영장보다 발부 요건이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구속영장을 바로 청구한 것은 종전까지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단서를 포착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이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듣고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데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다” “진행 중이고 지켜봐 달라”고 했었다.

공수처는 손 검사의 구속영장에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공직선거법위반 등의 혐의를 담았다. 손 검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지난해 4월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여권 인사 등을 고발하는 고발장을 작성토록 지시하고, 이를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공개된 텔레그램 캡처 화면에는 ‘손준성 보냄’이라는 문구가 표시돼 있었고, 이때 연결되는 계정은 손 검사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의혹 제기가 계속될 때에도 손 검사는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고발장 및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결코 없다. 저로서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법조계는 공수처의 수사가 손 검사의 신병확보를 꾀하는 선에서 곧 마무리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공수처 수사 도중 이 사건의 제보자 조성은씨는 본인이 지난해 4월 3일 김 의원과 나눈 대화 음성파일을 복원했다. 조씨가 국민일보에 공개한 녹취록에는 김 의원이 “초안을 아마 저희가 일단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제가 (고발하러) 가면 ‘윤석열이 시켜서 고발한 것이다’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대목이 담겨 있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선거 일정과 함께 가는 수사”라는 말이 나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