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단기 무역액 1조달러 견인에도 착잡한 반도체

입력 2021-10-27 04:02

한국이 역대 최단기간에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 분야에서 수출 호황이 이어진 데 따른 쾌거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 대상으로 반도체 공급망 정보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시한이 다가오는 상황이라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미국 정부가 기업들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지 한 달 만에야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양국 간 국장급 협의체를 구성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은 26일 오후 1시53분 한국의 무역액이 1조 달러(1167조5000억원)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연간 무역액이 10월에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래 처음이다. 현재 추세대로면 연간 무역 규모도 역대 최고치(2018년 1조1401억 달러)를 경신할 전망이다.


수출 호황의 영향이 컸다. 26일까지 수출액은 5122억 달러로 수입액(4878억 달러)보다 많다. 특히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아 반도체 수출은 지난 20일까지만 983억 달러(114조8144억원)를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올해 2분기 들어 세계 1위를 탈환했다.

그러나 마냥 자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주요 반도체 업체들에 반도체 공급망 관련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시한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관보에 지난 24일 자로 게재된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에 관한 의견요청 공지문’에는 반도체 생산 제품 목록과 판매실적과 예상 매출, 주문잔량, 거래처 등 생산에서 유통까지 총 26개 질의 항목이 담겨 있으며 대상 기업들이 45일 이내에 자발적으로 제출하게 돼 있다.

이에 따른 제출 시한은 다음 달 8일로 채 2주도 남지 않았다. 미국 정부 주변에서는 기업이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안보를 이유로 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국방물자생산법(DPA) 등이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기밀 유출 등 국내 기업 내에서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미국 정부의 공급망 정보 제출 요구 한 달 만에야 미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국장급 협의체를 구성했다. 산업부는 지난 25일 미 상무부와 국장급 화상회의를 열고 반도체 분야 협력의 중요성을 고려해 정례적인 국장급 반도체 대화채널을 신설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화상회의에서 정부는 미국 측의 정보 제출 요구에 대해 국내 반도체 업계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설명하고 앞으로도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정보 제출 요구 자체를 무산시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전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 자료 제출 여부는 전적으로 기업이 자발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며 정부 개입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SK하이닉스가 정보 제출에 협력 의사를 전했다고 미 상무부가 최근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미국 측의 반도체 정보 제출 요구가 기업 기밀 확보보다는 자국 내 반도체 공급 확대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보고 미국 내 반도체 공급에 협력하면서 한국 기업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반도체 등 4대 품목에 대한 공급망 정밀조사를 지시하는 등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