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극 ‘돛닻’… 돛 올리고 닻 내리는 한 예술가의 인생

입력 2021-10-20 04:06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이끄는 극작가 겸 연출가 민준호(왼쪽)가 지난 15일 고양아람누리에서 ‘돛닻’의 주인공인 무용수 겸 안무가 이선태와 함께 인터뷰를 하다 포즈를 취했다. 춤꾼 이선태의 여정을 그린 ‘돛닻’은 지난해 코로나19 탓에 개막 직전 취소됐다가 올해 관객을 만난다. 고양=강현구 기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를 이끄는 극작가 겸 연출가 민준호는 최근 대사를 최소화하고 몸짓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움직임극(신체극)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오는 29~31일 ‘간다’가 상주단체로 있는 고양아람누리 새라새 극장에서 무대에 오르는 ‘돛닻’도 그런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작품은 무용수 겸 안무가 이선태의 춤 인생을 움직임으로 풀어놓은 1인극이다. 제목은 예술가의 인생을 항해에 비유해 배가 나아가기 위해 돛을 올리고 정박하기 위해 닻을 내리는 데서 가져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한예종 졸업생 중심의 LDP 무용단에서 활동하던 이선태는 댄스 예능 Mnet ‘댄싱9’ 시즌1(2013년)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이번 작품에서 이선태와 공동안무를 맡았고 잠깐 출연도 하는 김설진은 한예종 졸업 후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에서 활동하다 귀국해 댄싱9 시즌2(2014년)에서 우승했다. 지난 15일 고양아람누리에서 민준호와 이선태를 만났다.

“한예종 연극원 졸업 후 무용원 전문사에 다닐 때 설진이를 만나 친해졌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었지만, 설진이가 피핑톰에 가면서 미뤄졌죠. 한국에 돌아온 설진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생각하는 움직임극과 설진이가 생각하는 무용의 개념이 똑같다는 것에 놀랐어요. 2019년 제 연극 ‘뜨거운 여름’에 설진이가 배우로 출연하면서부터 꾸준히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움직임극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를 준비할 때 설진이가 선태를 소개해 줬어요. 아름다운 무용수가 있다면서요. 작품 연습을 하며 서로 얘기 나눈 것이 ‘돛닻’으로 이어졌습니다.”(민준호)

움직임에 대한 민준호의 관심은 2004년 한예종 졸업 작품이자 프로 무대 데뷔작인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이 작품 이후로는 대사극을 선보이던 그가 다시 움직임극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간다’를 창단할 때부터 움직임이나 춤으로 된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생계나 극단 유지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없었죠. 레퍼토리가 축적되고 극단의 ‘늙은’ 배우들이 방송이나 영화로 많이 가면서 (생계 문제에서 자유로워져) 움직임극을 다시 만들 여유가 생겼습니다.”(민준호)

민준호와 함께 극단을 만든 진선규와 이희준 김민재 등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배우들이 ‘간다’의 초기 단원들이다. 움직임극으로 돌아온 민준호에게 김설진 이선태 등 춤꾼들은 작품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다. 민준호를 매료시킨 이선태의 춤 인생엔 무엇이 있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3살 위 형이 중학교에서 힙합에 빠진 뒤 제게도 춤을 가르쳐줬어요. 형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제 춤을 보신 충남예고 선생님의 권유로 예고를 거쳐 한예종에 입학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주변에서 칭찬해 준 게 춤을 계속한 동력이 됐죠.”(이선태)

대학 입학 후 춤의 본질을 고민하기 시작한 그는 한때 유학을 생각했다. 그러나 한국에 남아 LDP 무용단 입단 및 한예종 전문사 입학으로 방향을 튼 그는 댄싱9에 출연하며 “대중이 무용을 외면한 게 아니라 무용이 대중을 고려하는 데 소홀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2014년 자신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딴 1인 무용단 STL아트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흔히 ‘예술의 대중화’라고 하는데, 저는 ‘대중의 예술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현대무용이 발전하려면 대중이 현대무용의 가치를 알고 좋아하게 해야 합니다. 현대무용이 다양한 장르와 연계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작업을 보여줘야 합니다. STL을 만든 이유에요.”(이선태)

큰 포부를 갖고 STL을 만들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댄싱9 출연 당시의 열광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이선태는 “창단 공연을 2주 가까이 했다. (많은 관객을 기대하고) 한 달간 하려다가 주변의 만류로 줄였는데, 소극장이지만 29명밖에 안 온 날도 있었다”며 “그때 미디어가 만든 거품 인기를 확실히 깨달았다. 동시에 미디어의 위력과 영상에 관한 관심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선태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기도 배운 그는 작은 역이라도 연극과 영화 등에 꾸준히 출연하는데 지금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어른 빌리 역으로 출연 중이다.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배우는 게 많아요. 연기와 춤이 통하는 것도 느꼈고요. 요즘 가장 많이 관심을 두는 것은 댄스필름 등 무용영상 작업입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여러 플랫폼에서 댄스필름을 볼 수 있게 돼 재밌는 시도를 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이선태)

고양=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