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정보 요구에… 정부 ‘기업자율’만 강조

입력 2021-10-19 04:05
뉴시스

정부가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정보 요구에 대해 ‘기업 자율’에 기초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혔다. 제출 시한이 2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해당 사안을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당초 포부와 달리 정부 대처가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사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첫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미국 반도체 정보 제공 요청 관련 동향 및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홍 부총리는 “기업 자율성과 정부 지원, 한미 협력 등에 바탕을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기업계와의 소통협력을 각별히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다음 달 8일까지 생산 시스템 및 재고, 매출, 공장 증설 계획 등 공급망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이같은 요구가 전례가 없는 일일뿐더러, 외부로 해당 자료가 유출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료 제출 요구가 표면적으로는 ‘요청’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에 가깝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협조하지 않는 기업은 국방물자생산법(DPA)을 근거로 정보 제출을 강제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고, 미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KEI)는 향후 미 공공 조달에 참여가 제한되는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미국 정부를 상대로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에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미국 상무부와 소통하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우선 한국 정부가 미국 상무부에 (해당 요구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임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최종적으로 미국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면, 일단 요구 자료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 자료를 제출받은 뒤 외부에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비밀 보장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우리 기업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5~6일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우리 측 입장을 전했고, 홍 부총리도 지난 14일(현지시간)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과 만나 반도체 정보 제공 요청에 따른 국내 기업의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전해지지 않았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