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기존 선박과 비슷했지만 운항을 시작하자 차이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키를 돌리지 않아도 항구를 드나드는 선박을 피해다녔고, 곳곳에 어뢰처럼 숨어있는 암초나 섬도 자동으로 인식해 비켜갔다. 지난달 30일 전남 목포 목포해양대 교내 선착장에서 올라탄 ‘세계로’ 호는 2025년 183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율운항선박 시장에 나설 우리 기술의 첨병이었다.
코로나19 간이 검사를 실시한 뒤 제일 먼저 널찍한 조타실로 향했다. 조타실 가운데에 자율운항의 컨트롤 타워격인 화상 설비가 설치돼있었다. 엔진·레이더 등 선박 구동에 필요한 핵심 장치들과 연결돼 있다. 올 상반기 설치가 끝난 이 설비의 기능은 예상 외로 단순한 구조로 구성됐다.
선박 외부에 설치된 3대의 카메라가 전후좌우를 실시간으로 살피며 충돌 위험을 감지한다. 위험이 인식되면 인공지능(AI)이 자동으로 회피 운항을 실시한다. 최근 저변이 넓어진 자율주행차와 비슷한 원리다. 여기에 수심 높낮이에 따라 항로를 수정하는 기능이 추가됐다. 육지와 달리 바닷길은 물 속 지형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부터 진행된 여러 차례의 실증 운항은 성공적이다. 경력 6년차인 김영진(29) 항해사는 “기술이 상당히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세계로호를 활용한 자율운항 실증은 해양수산부 등 정부가 2025년까지 진행하는 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작업의 일환이다. 국비(1197억원)를 포함해 모두 1603억원이 투입된다. 후발 주자인 탓에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면 조선업 경쟁력 자체가 떨어질 것이라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어큐트 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816억2000만달러(약 96조5900억원) 규모인 자율운항선박 시장은 2025년이면 1550억6000만달러(183조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우위를 점한다면 얻을 수 있는 과실은 달다. 17일 해수부에 따르면 ‘완전한’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을 통해 2035년에는 조선업과 기자재 등 전·후방산업에서 모두 99조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 속 지형도 등 각종 지형 정보와 AI 연동 면에서 보완할 점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장기적으로는 항해사 등의 일자리 문제도 고민거리다. 김 항해사는 “산업혁명 때도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했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 것처럼 자율운항선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목포=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