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사진) 대통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대장지구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 당과 관련한 현안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기말 대통령이 여당 주도 정책에 우려를 표하거나, 여권 대선 주자를 자극할 수 있는 사안에 입장을 밝히는 것은 이례적이다. 40%에 달하는 대통령 지지율을 바탕으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 운영에 악재가 될 만한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7 재보선 참패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취임 이후 당청 관계의 무게추는 당으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5월 임혜숙·박준영·노형욱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자격 논란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기대하는 능력이 있다”며 세 후보자를 두둔했다. 이후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가 후보자 3인 가운데 최소 1명의 지명철회를 요구했고,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면서 박 후보자가 자진사퇴했다.
지난 6월에도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을 두고 당청 갈등이 불거졌다. 여당 지도부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경질된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논란과 관련해 김외숙 인사수석의 사퇴를 요구했다. 청와대 내부에선 “인사수석이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별도의 입장을 내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인사 문제를 계기로 청와대가 아닌 여당에 국정 주도권이 쏠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랬던 당청 관계는 언론법을 계기로 반전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언론법에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당이 주도하는 사안이라도 미비한 점이 있다면 청와대가 입장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런 뜻이 민주당에 전해지면서 언론법 논의는 한 차례 미뤄졌다.
이후 민주당 지도부가 강행처리를 시사했지만 의원총회에서 친문 의원들이 단합해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히면서 언론법 본회의 상정은 잠정 중단됐다. 여야 정치권이 ‘대장지구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청와대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에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하락했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며 40%대를 회복한 것을 당청관계 반전의 원인으로 꼽는다. 여권 관계자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코로나 위기 극복 등 정권이 처리해야 할 현안이 이어지다보니 임기말에도 청와대에 힘이 쏠리고 있다”며 “민주당도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청와대의 제안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