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여, 세계와 함께 변할 것인가 어제와 함께 사라질 것인가

입력 2021-10-15 03:04
신데카메론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교회와 사회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이야기 10개를 선보인다. 사진은 14세기 당시 흑사병 대유행을 피해 나눈 10일간의 이야기, 데카메론이 저술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신(新)데카메론’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데카메론’은 10일간의 이야기란 뜻으로 14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썼다. 페스트가 창궐한 세상을 피해 피렌체의 한 별장에서 세 청년과 일곱 숙녀가 10일에 걸쳐 순번대로 이야기하는 구조다. 왕후 귀족 악한 가난뱅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등장하고 익살 외설 비극 희극이 혼재돼 있다.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유럽 산문의 모범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여명의 시기, 최고의 서사시로 불린다.


신데카메론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을 피해 화상 플랫폼 줌으로 모여 세계 각지의 그리스도인이 나눈 10개의 이야기다. ‘아직 오지 않은 교회와 세계에 관한 열 가지 이야기’란 부제가 붙었다. 교회와 사회의 재편을 예고하는 내용들로, 익숙한 듯하면서도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다.

책을 기획한 최종원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교수는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익숙함을 넘어서는 다른 관점으로 사회 현상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수고를 더 많이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과학과 기독교, N번방, 저널리즘, 공중보건, 탈종교, 본회퍼, 공공신학, 이중 소명, 루터교 등 10개 이야기는 공통으로 묻고 있다. ‘교회여, 세계와 함께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어제와 함께 사라질 것인가.’

탈종교 현상, 한국교회의 부침, 공공신학 등에 먼저 눈길이 간다. 박정위 캐나다 연방정부 통계청 사회통계분석관은 한국 인구센서스를 통해 무종교인 비율이 단순히 젊은 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전 연령대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실증한다. 2015년을 기준으로 2005년과 견줘 10년간 25~34세의 무종교 응답 비율이 월등히 늘었고, 그다음으로는 85~94세, 75~84세, 55~64세, 65~74세 구간 순으로 무종교 답변이 늘었다고 분석한다. 나이가 들수록 종교를 돌아본다는 속설이 한국 현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탈종교 현상이 전 연령대에 걸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다가왔음을 살핀 것이다.

옥성득 미국 UCLA 한국기독교학 석좌교수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 한국교회 역사를 반추하며 코로나19 이후 교회에 대한 교인의 충성도 약화, 교인 수 격감, 새로운 교회의 출현, 목회자의 전업 등을 예측한다. 옥 교수는 “이제 우리가 기대할 것은 건강하고 겸손한 교회들이 새 모델을 만들어 작고 좋은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행동주의 중심의 영성’이 ‘안식과 평화를 추구하는 영성’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회가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수록 주목받는 분야는 ‘공공신학’이다. 최경환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이 ‘새로운 역할과 자리가 열린다’는 제목으로 공공신학의 어제 오늘 내일을 살폈다. 최 연구원은 “공공신학은 민주화 이후 기독교 신앙의 사회참여 방식과 그 내용을 고민하는 신학이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으로 ‘한국교회가 복음의 메시지를 세속사회 속에 녹여내려 할 때, 합리적 절차와 과정을 밟고 있는가’ ‘공론장의 엄정한 비판과 무게를 견디면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어 내는가’를 꼽는다.

최 연구원은 “교회가 시민사회에서 자신의 의제를 관철하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문법과 논리를 따라가야 한다”며 “한국교회가 공적인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재잘거리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안 공간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교수는 일과 가정 양립에 관한 엄마로서 이중 소명,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는 질문하고 소통하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 김지방 쿠키뉴스 대표는 한국에서 21년차 기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 등을 이야기한다. 위드 코로나가 성큼 다가온 시기,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팬데믹의 교훈을 깊숙이 성찰하도록 돕는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