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전자적 전송물’로 불리는 음악·스트리밍 영상과 같은 콘텐츠 시장에는 장벽이 없다. 방탄소년단(BTS)의 뮤직 비디오나 음원을 전 세계 어디서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등 일부 국가에서 ‘디지털 상품’인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제공하면서 생긴 이익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안을 비롯해 사실상 정형화된 규칙이 없는 디지털 통상에 규범 정립을 논의하는 자리가 올해 안에 마련된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열릴 예정인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의 안건 중 하나로 디지털 통상 규범이 다뤄진다. BTS 뮤직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WTO가 1998년부터 무관세 원칙을 지켜 온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관세 부과 논의도 그 중 하나다. 유명희 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7월 “코로나19 이후 일부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전자적 전송물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오는 12월 다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류 문화상품이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물품에 대한 관세가 부과될 경우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도 변화하게 된다.
해외 직구 등이 활발해지면서 끝없이 커지고 있는 전자 상거래에 관한 규범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닷컴에 따르면 전자상거래 판매 규모는 지난해 기준 4조580억 달러(약 4864조원) 규모까지 늘어났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2019년 기준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를 26조7000억 달러(약 3경2027조원)로 추산했다. 소비자 권리나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지에 대한 규범 마련 논의가 핵심이다. 결과에 따라 디지털세와 마찬가지로 한국 기업들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달라진다.
데이터 국경 이동에 관한 논의 역시 첨예하다. 글로벌 기업은 다양한 국가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들을 한 곳으로 집약해 국가별 맞춤형 상품을 만들길 원한다. 하지만 개인정보가 포함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합법인 원격의료를 한국에서는 받을 수 없다. 개인정보인 의료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막아 둔 탓이다. 자유무역을 기조로 삼고 있는 WTO는 자유로운 데이터 국경 이동을 위한 규범 정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올해 WTO 각료회의에서 개별 사안에 대해 명확한 결론이 나올 지는 미지수다. WTO가 2018년 시작한 디지털 통상 규범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다. 일례로 아직 BTS의 음원을 해외에서 듣는 것이 상품 수출인지 서비스 수출인지조차 정의하지 못했다. 데이터 국경 이동도 어떤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을 가진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등 강대국 간 입장차가 크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논의 진행 속도가 빠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