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눈치게임’ 된 통합물관리 정책

입력 2021-10-13 04:06

“작년 여름 홍수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물관리일원화는 언급조차 안 됐을 겁니다.”

수자원 분야의 한 대학교수가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한 말이다. 역대 최장 장마와 물난리가 아니었다면 국토교통부에 남아 있던 하천관리 업무가 환경부로 일원화되긴 힘들었을 수 있다는 의미로, 물 관련 정책은 대형사고가 터져야 정부가 움직이고 국회가 반응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13회(번외편 포함)에 걸친 통합물관리 시리즈를 기획·취재하면서 만난 전문가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들은 “주요 물관리 정책을 주무부처에서 수립하고 한국수자원공사 같은 물관리 전문기관과 지방정부가 실행에 옮기면 통합물관리를 실현할 수 있다”면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의 물관리 정책·예산은 정치적 헤게모니와 부처별 영역 싸움,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돼 진흙탕 싸움이 된 지 오래됐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홍수피해를 두고 정부·기관들이 서로 네 탓이라고 폭탄 돌리기를 한 것도 해묵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아직도 발전용 댐 건설·관리는 산업통상자원부, 온천수는 행정안전부, 농업용수는 농림축산식품부에 흩어져 있다. 한 줄기의 하천인데 하천법은 내년부터 환경부 소관이고 소하천정비법 소관은 행안부에 있다. 국가하천과 지방하천 관리 주체가 다르고 영역별로 수량·수질·이수·치수·생태관리 기준도 제각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가 전체 용수량의 60%를 차지하는 농업용수는 연간 사용량조차 집계되지 않는다. ‘통합물관리 정책’에서 환경부의 댐·하천 통합관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난여름 독일과 벨기에에선 1000년 만의 대홍수로 2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중국은 20조원 넘는 재산 피해를 보았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와 인류를 위협한다. 대비하지 않고 재난재해가 발생한 후에야 ‘눈치게임’하듯 법·제도를 손보는 관행은 멈춰야 한다. 국회와 정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엉켜버린 물 관리 정책들을 원점에서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때다.

세종=최재필 사회부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