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저희 엘리 앉을 자리 좀 깨끗하게 소독할게요.” 서울 서대문구 한 교회에서 만난 이엘리(25)씨의 어머니는 알코올 소독제로 연신 의자를 닦았다. 면역력이 약한 딸을 위해 항상 소독용품을 들고 다닌다고 했다. 이씨는 2019년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진단을 받았다. 대식세포가 이상 증식해 이씨의 폐, 간, 골수를 망가뜨렸다. 독감인줄 알고 해열제 먹으며 버틴 대학 3학년 중간고사가 마지막 시험이 됐다. 반복되는 항암치료와 입·퇴원 끝에 지난해 5월 조직적합성항원형이 일치하는 조혈모세포 기증자가 나타났고, 같은 해 10월 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1년. 이씨는 얼마 전 대학 동아리 친구를 만났다. 2년 만에 ‘평범한 외출’을 한 이씨는 “드디어 일상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혈액을 만드는 어머니 세포’라는 뜻의 조혈모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모든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세포를 말한다. 백혈병 악성림프종 등 난치성 혈액 질병 환자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완치될 수 있다. 누구나 기증 희망 신청서를 작성하고 채혈을 하면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을 할 수 있다. 조직적합성항원형이 일치하는 혈액 질환자가 나타날 경우 다시 유전자 검사가 진행되고 최종적으로 일치하면 기증 절차가 진행된다.
15년 전 학교 축제 기간에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 부스를 만났던 나모(35)씨는 올해 6월 조직적합성항원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입원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골반뼈에서 골수를 채취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최근에는 헌혈처럼 말초혈 기증으로 진행된다는 말에 기꺼이 팔을 걷었다. 그 환자는 조혈모세포가 잘 생착돼 퇴원했는데 최근 가벼운 재발이 보여 나씨에게 다시 한 번 기증을 요청했다. 재요청을 받고 침대에 누워 림프구를 기증하고 있던 나씨는 “몸에 있는 것을 잠깐 빼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많은 분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글=이한결 기자 alwayssame@kmib.co.kr
[앵글속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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