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이 어쩌다… 中, 3대 악재발 전력난에 배급제 실시

입력 2021-10-12 00:07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있는 한 석탄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지난달 29일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전력난이 심상치 않다. 31개 지방정부의 3분의 2가 전력 제한·중단 조치를 시행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이 같은 전력난은 중국 정부의 급격한 탄소 감축 정책과 이를 이행하는 지방정부 관료들의 편의주의, 호주와의 갈등 때문으로 분석된다.

11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9월 중순부터 중국 31개 성(省)·직할시·자치구 가운데 광둥성, 저장성, 장쑤성, 랴오닝성, 지린성 등 20개 성에서 산업용 전기를 중심으로 제한 송전이 이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전기요금도 올라 제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 제조업 중심지인 광둥성은 전력 사용량 피크시간대에 전기요금을 25% 올렸다. 광둥성 둥관의 한 제조업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어떤 공장은 1주일에 딱 하루만 작업이 허용된다”고 전했다. 장쑤성에 있는 포스코 중국 공장도 지난달 제강과 열연 등 일부 공장 가동을 14일 동안 중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상황이 중국 내 다른 지역이나 가정용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는 정전으로 신호등이 꺼져 도로 전체가 마비되기도 했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은 신선식품 슈퍼마켓을 제외한 상업시설의 영업을 오후 4시까지만 하도록 조치했다.

전력난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정부의 급격한 탄소 배출량 감축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탄소 배출량 감축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언급한 최우선 정책 과제다.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적용되는 14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14·5계획) 기간 에너지 소비 총량을 13.5%, 탄소가스 배출량을 18%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탄소 감축 정책은 탄소 배출이 많은 화력발전을 줄이고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게 뒤따라야 하는데 중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국 거시경제 사령탑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각 성급 지역에 단순히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고 달성하도록 채근했다. 발개위는 무조건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지역에는 인센티브를 주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지역은 처벌한다”고 못 박았다.

이런 처벌 소식에 지방정부 관료들이 선택한 게 단순한 전력 공급 제한이었다. 베이징 소식통은 “각 지방정부가 전력 공급을 제한하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공장 가동중단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극심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중국 북동부 랴오닝성 선양의 한 식당에서 지난달 29일 정전사태가 빚어지자 한 남성이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중국은 전력 부족 탓에 전국 31개 지역 가운데 20개 지역에서 전력 공급 제한 조치를 시행 중이다. AP연합뉴스

여기에 호주와의 갈등도 중국의 전력난을 부채질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탄 수입국인 중국은 2019년 기준으로 발전용 석탄의 57%와 코크스용 석탄의 40%를 호주로부터 들여왔다.

그런데 지난해 호주가 5G 네트워크 구축에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를 배제하고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은 호주에 대한 보복 조치에 나섰다. 중국은 호주산 석탄과 목재, 와인 등의 수입을 제한했다.

중국은 석탄 공급에 차질을 빚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콜롬비아 등 수입선 다변화를 시도했지만 거리 문제로 물류 부담이 발생했고, 남아공 석탄에는 불소가 많이 함유돼 있는 등 질이 좋지 못했다.

중국은 부랴부랴 네이멍구자치구 등 자국 노천 광산에서 석탄 채굴에 나섰으나 설비와 제반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만 2~3년이 소요된다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결국 중국은 최근 화력발전용 석탄 부족 등에 따른 전력난에 수입금지 조치로 항만에 보관돼 있던 호주산 석탄 일부를 풀었다.

이 때문에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낮아지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중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8.2%에서 7.7%로 내렸다. 모건스탠리는 정전에 따른 생산 감축이 올해 내내 지속한다면 4분기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을 1% 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는 이번 전력난 사태로 중국의 GDP 증가율이 3분기와 4분기에 0.1∼0.15% 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전력난으로 중국 공업지대가 가동을 멈추면서 전 세계 공급망이 줄줄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자·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품 품귀 현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경제 매체 제일재경에 따르면 중국 전력공급 제한이 자국 내 일부 반도체 공급망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면서 그 여파가 애플,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HP, 델과 같은 미국의 전자·자동차 업체를 넘어 퀄컴과 인텔 등 반도체 업체에까지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판, 전자소재, 발광다이오드(LED) 같은 상품 공급이 일단 중단되면 전체 공급망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노무라홀딩스의 팅 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시장은 섬유, 기계 부품 등의 공급 부족을 느낄 것”이라며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