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53)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여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으로 구성된 여성 축구팀을 지도했다. 12년간 성인 프로팀 감독만을 역임하면서 많은 성공을 일궈냈지만, 지난해 마지막 팀이었던 대전 하나시티즌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한 터였다. 치열한 현장을 떠나 축구에 막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한 일반인 여성 선수들을 지도한 기간이 황 감독에게 많은 영감을 불어 넣은 듯했다.
황 감독은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예선 선수단 소집 기자회견에서 이를 언급하며 “한발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야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며 “제 틀에 맞추기보다 그들의 틀에 들어가고, 눈높이를 제 기준보다 팀원들에게 맞춰 생각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지난달 15일 처음으로 연령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프로팀에서 유망주를 발굴해 성장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다양한 연령의 선수가 섞인 프로팀과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로만 구성된 대표팀은 다르다. 선수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어우러져 동기를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한 이유다.
그는 “짧은 시간이라 다 파악하긴 어렵지만 프로팀에서 경험해본 젊은 선수들은 밝고 긍정적이며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며 “그들과 어우러져 밝은 분위기 속에 훈련하고 경기하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24일부터 나흘간의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23명의 ‘황선홍호’ 선수들은 U-23 아시안컵 예선 대비를 위해 11일 파주 NFC(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소집됐다. 대표팀은 H조에서 필리핀(25일) 동티모르(28일) 싱가포르(31일)와 맞대결을 펼친다. 11개 조의 1위 11개 팀과 각 조 2위 중 상위 4개 팀만이 내년 6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본선에 진출한다.
김학범 감독이 이끌던 U-23 대표팀이 지난해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황 감독으로선 대회 성적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예선 통과는 무난해 보이지만, 각국의 실력 차가 크지 않은 연령별 대회라 본선 상황은 예측이 어렵다. 황 감독이 단순히 성적만 좇는 건 아니다. 그는 “가능성 있는 선수의 인재풀을 넓히는 게 목적이다. 첫 국제대회라 우리 팀이 자신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며 “선수들을 잘 성장시켜서 한국 축구를 경쟁력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팀 색깔은 ‘스피드’다. 이를 위해 빠른 공격에 능한 박정인(부산) 이동률(제주) 최건주(안산)를 뽑았다. 강윤구(울산) 고재현(서울E) 구본철(인천) 등 속도 있는 공수전환을 담당할 선수도 승선시켰다.
황 감독은 “공격 진행, 공격 후 전환의 속도를 높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훈련도, 경기 운영도 할 생각”이라며 “어린 선수들인 만큼 과감하고 용감한, 창의성 있는 플레이가 많이 나오게 유도하려 한다”고 밝혔다.
황 감독과 23명의 선수는 열흘가량 훈련을 한 뒤 오는 20일 싱가포르로 떠난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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