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국영화의 수준은 세계적이다. 아무런 불만이 없다.”
60여년간 한국영화계의 버팀목이었던 거장 임권택 감독은 7일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혔다. 임 감독은 전날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그는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쫓아 살았다. 이제 그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을 할 나이”라며 “상은 받은 사람에게 격려와 위안이 되고 분발심이 생기게 해야 하는데, 끝난 인생에 주는 공로상 같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어 “받으면 늘 좋은 게 상이지만 더 활발히 작품활동을 해야 하는 분들한테 가야 할 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임 감독은 자신의 수상보다 최근 한국영화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상황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임 감독은 2000년 ‘춘향뎐’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로는 처음 초청받았다. 2002년에는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그는 “몇 해 전만 해도 내 작품을 포함해 한국영화를 볼 때 완성도 면에서 미흡한 점이 더러 눈에 띄었다”면서 “지금 우리 영화는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다. 완성도 높은 탄탄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등 후배 감독들의 작품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그는 “한국영화가 세계적 수준보다 뒤처질 게 없는 시대가 왔다. ‘기생충’은 너무 좋아서 봉 감독에게 전화해 ‘영화 잘 봤다’는 인사까지 전했다”고 했다.
영화인으로 살면서 힘든 순간은 언제였을까. 임 감독은 ‘상에 대한 부담’을 꼽았다. 그는 “내 능력은 미치지 못하는데 큰 영화제에서 상을 타 오기를 기대하는 주변의 압박이 고달팠다. 꼭 빚진 것 같았다”며 “그 압박이 나를 너무 쫓기듯이 살게끔 했다”고 돌이켰다. 또 “좀 더 여유를 갖고 영화를 즐기면서 찍어야 했는데 고통 안에서 작업을 했다”면서 “2002년 ‘취화선’으로 상 받고 나서 체면이 조금 섰지만, 영화제는 늘 나를 옥좼다”고 털어놨다.
영화 인생에 가장 큰 버팀목이 누구였냐는 질문에는 “집사람”이라고 답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임 감독은 “수입이 없어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는데도 잘 견뎌주면서 내가 아직도 영화감독으로 대우받도록 살게 해줬다. 신세 많이 졌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구상 중인 작품이 있는지 묻자 “내가 아무리 간절해도 영화로부터 스스로 멀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부산=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