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 일하면 1시간 쉬라는데… 마음 편하게 쉴 공간이 없다

입력 2021-10-08 04:02
아이 돌봄 노동자들은 법으로 정해진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기 어렵다. 짧은 시간 동안 외부에 다녀오기도 어렵고 집 안에서 쉰다 해도 아이가 울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그냥 모르는 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강모(60)씨는 20대 중반부터 ‘엄마’의 삶을 살았다. 15년 전쯤 자녀 모두 성인이 됐지만 그 무렵 남편이 직장에서 은퇴하면서 강씨도 돈을 벌어야 했다. 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엄마 경력’으로 선택한 건 ‘아이 돌봄’ 일이었다.

두 가정의 아이를 돌보는 15년차 강씨의 일과는 오전 7시30분 시작된다. 첫 번째 돌봄가정 아이 엄마의 출근시간에 맞춰 아이 집으로 출근한다. 강씨가 돌보는 아이는 이제 막 걷는 게 익숙해진 18개월 남아다. 이 집에서 강씨는 하루 8시간30분 근무한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먹이다 보면 잠시 앉을 새도 없이 정해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정부는 2018년 7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후 아이 돌보미도 4시간 일하면 30분, 8시간 일하면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강씨는 1시간을 온전히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라며 “돌보던 아이를 혼자 놔두고 휴식을 취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서 휴게시간에 온전히 쉬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4시간이 지나 30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규정을 잘 아는 엄마들이 휴식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강씨가 일하던 곳의 아이 엄마도 “30분 쉬었다 오라”고 말하지만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30분 동안 근처 카페를 가기도 애매했고, 쉬려고 해도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강씨는 “날 배려해서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난감했다”며 “낯선 곳에서 나 혼자 밖에 나가 쉴 곳이 어디 있겠나.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신다고 해도 돈이 드는 일이고, 그러기에 30분은 너무 짧다”고 했다.

결국 아이의 집에서 ‘무늬만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울면 모르는 척하기 어려웠다. 그냥 쉬는 시간에도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분명 일을 했음에도 돈을 받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강씨는 “유명무실한 강제 휴게시간이 아닌 다른 방식의 처우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정에서 강씨는 휴게시간 1시간을 규정에 없는 ‘요리’를 하는 시간으로 쓴다. 규정상 아이 돌보미는 불을 사용할 수 없다. 육아만 담당해야 하고 요리 등 다른 업무를 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원칙대로라면 부모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아이에게 먹여야 한다. 하지만 규정대로 육아를 할 수 있는 집은 거의 없다.

강씨는 “15년 넘게 일했지만 아이 집 대부분 밥은커녕 간식거리도 없다”며 “돌봄 노동자는 집안일에 능숙한 나이 많은 여성들이기 때문에 요리 정도는 수월하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요리를 만드는 일은 사실상 고정 업무다. 추가 수당도 당연히 없다.

쉬는 시간에 아이 조부모 수발까지 할 때도 있다. 아이 육아는 육아대로 하고, 쉬는 시간에 ‘부모님 식사를 차려 달라’는 식이다. 이를 거부하면 “예전 선생님은 해주셨는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강씨는 “부모가 아이 돌봄센터에 항의를 하면 바로 일을 그만둬야 한다”며 “우리에게는 고용주이니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근무표도 허위로 작성해야 한다. 8시간 넘게 연달아 일했음에도 ‘1시간 쉬었다’고 기록하는 식이다. 또 4시간을 한곳에서 일했어도 문서에 2시간 일하고, 또 다른 곳에서 2시간 일한 것으로 쪼개서 기록하기도 한다. 강씨는 다른 돌봄 일자리 상황도 비슷하다고 했다.

서울 25개구 아이 돌보미 3000여명의 평균연령은 만 65세로 대부분 60, 70대다.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로 자리잡았지만 각 가정에서 원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부당한 조건을 요구받아도 거절하기 어렵다. 대부분 생계형 근로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다.

강씨는 “나이 든 사람에게 고용시장은 팍팍하다”며 “모든 엄마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휴식'이란 이름의 노년 무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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