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아들이 희망·사랑이 만나 나눔·배려 배웠어요 [개st하우스]

입력 2021-10-09 04:07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웰시코기 희망이(오른쪽)와 닥스훈트 사랑이가 좋아하는 사과를 앞에 두고도 의젓하게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먹여주기 전에는 그릇 위 음식을 건드리지 않았다.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9살 소년 예섭이는 두 견공을 만나면서 먹을 것을 챙겨주고 배변을 치우는 등 사회성이 발달했다.

“아들 예섭이는 9살인데 기저귀를 차고 말을 할 줄 몰라요. 그런데 얼마 전 유기견 임시보호(임보)를 시작하면서 동물과 교감을 하더라고요. 간식을 먹여주고는 깔깔 웃고, 강아지가 배변 실수를 하면 그걸 치워주려 해요. 캄캄한 블랙홀에 빠진 것 같던 아이가 나누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눈물이 납니다.”(제보자 전근영씨)

아삭아삭. 9살 예섭이는 두 마리의 반려견과 사과를 나눠 먹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본인이 먼저 한입 베어 물고, 얌전히 기다리는 웰시코기와 닥스훈트의 입에도 쏙 넣어주죠. 예섭이는 엄마에게도 먹을 것을 양보하지 않던 아이였습니다. 두 마리 유기견들을 만난 뒤 오빠처럼 의젓하고 다정해졌습니다.

이 평범한 일상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예섭이는 선천적 뇌 병변으로 지능이 한 살 아이 수준인 지적장애를 갖고 있거든요. 그런 예섭이가 나눔과 배려를 깨우치면서 공감과 사랑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두 견공을 만나며 시작된 놀라운 변화입니다.

“말 못 하는 우리 아들 같아서…
희망이(하얀 털)와 사랑이(검은 털)는 구조 당시 자궁출혈, 갈라진 발바닥, 부풀어 오른 젖꼭지 등 번식장 모견의 증상을 보였다.

지난 3월 인천 남동구의 외진 골목길에서 버려진 닥스훈트와 웰시코기가 발견됐어요. 중성화하지 않은 암컷들이었죠. 젖이 차서 부어오른 젖꼭지, 온몸에서 썩은 내를 풍기는 피부병, 철창 위를 딛다가 생긴 발바닥의 굳은살 등 번식장 모견의 증상을 보였어요. 봄비가 내린 터라 유기견들은 흠뻑 젖은 채 동네를 며칠째 떠돌고 있었습니다.

두 마리를 구조한 건 제보자 전근영씨입니다. 세 남매를 키우느라 넉넉지 않은 형편 탓에 가끔 사료를 챙겨줄 뿐 선뜻 구조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근영씨는 “병들고 아프다고 버림받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가엾고 불쌍했다”면서 “얘들처럼 말 못 하는 아들 예섭이가 떠올라서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제보자는 성격이 유순했던 두 유기견을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두 마리의 건강상태는 심각했어요. 피부병으로 인한 피부 괴사, 자궁내막염 등을 앓고 있었죠. 수의사가 인도적 안락사를 권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보자는 숨이 붙어있는 한 녀석들을 돌볼 생각이었습니다.

동물병원을 방문하는 견공들은 이름이 있어야 해요. 제보자는 꼭 평생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약속의 의미로 4살 웰시코기에겐 ‘희망이’, 2살 닥스훈트에겐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렇게 온 가족의 환영 속에서 두 마리의 임보가 시작됐습니다.

유기견 만나 이렇게 변했어요
두 견공은 구조자 전근영씨의 정성스러운 임시보호로 6개월 만에 건강을 회복했다.

제보자의 돌봄을 받으며 희망이와 사랑이의 건강은 빠르게 호전됐어요. 하지만 임시보호 초기에는 초등학생 자녀들과는 격리해둘 수밖에 없었는데요. 조금은 특별한 아들, 예섭이 때문이었습니다.

예섭이는 선천적 뇌 병변으로 인한 중증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요. 꾸준한 재활훈련으로 스스로 걷고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는 것 같은 간단한 활동은 가능하지만 타인과 대화하거나 물건을 건네주는 것 같은 사회적 활동은 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섭이가 유기견과 만나도 좋을지 엄마는 확신할 수 없었죠.

희망이와 사랑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적응을 마칠 즈음, 엄마는 조심스럽게 예섭이와 두 견공의 첫 만남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철제 울타리를 두른 작은 방에서 희망이와 사랑이를 보호하며 예섭이의 반응을 살폈던 거죠. 새로운 친구가 마음에 들었던 걸까요. 예섭이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울타리 쪽으로 다가가더니 두 견공을 향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를 내밀었습니다. 평소 과자봉지를 끌어안고 잠들 만큼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아이가 보여준 생애 첫 나눔이었어요. 예섭이는 또 두 견공이 소변을 실수하면 걸레나 수건 등을 찾아내 닦으려고 했습니다.

예섭이는 평소 병원과 재활센터에서 걷는 훈련, 퍼즐을 조립하는 기능훈련, 언어 교육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가진 것을 나눠주고 돌보는 정서는 배울 수 없었죠. 유기견과 어울리며 정서적으로 훌쩍 성장한 예섭이를 보며 제보자는 “아이가 동물과 교감을 한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간과 동물이 교감함으로써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동물매개치료라고 합니다.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 등이 도우미 동물과 만나면서 정서적·심리적 성장을 하도록 돕는 치료법입니다. 김복택 한국반려동물매개치료 협회장은 “동물은 직관적이고 솔직하게 반응하므로 지능수준이 낮은 장애아동과도 쉽게 교감할 수 있다”면서 “예섭이의 경우도 반려견과 일상을 함께하며 매개치료만큼 정교하지는 않지만 교감 능력과 정서적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전근영씨는 지난 4일 “자식과 정이 깊은 두 견공을 고민 끝에 가족으로 맞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7일 인천 연수구의 제보자 집을 방문했습니다. 6개월의 임보를 거쳐 건강과 사회성을 회복한 사랑이와 희망이의 입양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견공은 처음 만난 취재진에게 달려와 안겼습니다.

음식을 먹는 속도가 느린 장애아동과 함께 지내서일까요. 두 견공은 사람이 직접 건네주기 전에는 맛있는 간식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어요. ‘먹어’ 신호 전까지는 눈앞의 간식을 먹지 않는 ‘기다려’ 교육을 반복했는데요. 10초 넘게 버티는 의젓함도 보여줬답니다.

오후 4시가 되자 재활교육을 마친 예섭이가 돌아왔어요. 수고한 아들에게 제보자는 좋아하는 사과를 깎아줬습니다. 예섭이는 사과 몇 조각을 먹은 뒤 오순도순 모여있는 희망이와 사랑이에게도 사과를 먹여주었답니다. 함께한 6개월 동안 소년과 두 견공은 나란히 성장했어요. 예섭이는 나눔과 돌봄을, 사랑이와 희망이는 기다림과 의젓함을 길렀답니다.

지난 4일 제보자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습니다. 제보자는 “6개월 임보로 정이 깊어진 두 견공을 입양하기로 했다”고 전했습니다. 고민이 많았답니다. 매달 100만원에 달하는 예섭이의 재활훈련비로 생활이 빠듯한 데다, 두 견공에 제보자의 다섯 가족까지 함께 지내기엔 20평 남짓한 낡은 빌라가 너무 좁으니까요. 그런데도 입양하기로 결정한 데는 세 남매의 공이 컸답니다. 두 견공과 이별할 생각에 슬퍼하던 남매들은 “반년이나 함께한 친구를 보낼 수 없어요” “사랑이와 희망이의 산책, 배변 청소를 도울게요”라며 제보자를 설득했죠. 초등학생 자녀들이 보인 성숙한 모습에 감동한 제보자는 두 견공을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 위기에서 행복까지, 두 견공의 여정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검색하시기 바랍니다.


이성훈 기자, 인천=글.사진 김채연 인턴PD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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