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다시 태어나는 기분

입력 2021-10-08 04:05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반복하는 나의 삶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 가파도의 작가 레지던시에서 한동안 지내고 있는 P씨도 나를 좀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일하고 제주로 건너오는 걸 몇 번 하고 난 뒤 바로 편도선염이 와서 며칠 쓰러져 있었다는 것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해내고 있는 거냐고 놀라운듯 묻는 P씨의 질문에 나 역시 새삼스러운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그러게, 왜 여태 피곤함 없이 제주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5년 넘게 잘도 살아오고 있는지. 특별히 체력 혹은 정신력이 강인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남들은 안 되는 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매운 음식을 제 아무리 좋아해도 매운맛에 취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매운 음식을 먹어도 매운 줄 모르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어쩌면 나에게도 긴 여정에 고단함을 느끼지 못하는 신비한 스태미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간혹 짐이 너무 많거나 왕래가 지나치게 잦거나 할 때는 힘이 달리곤 한다. 그러나 그걸 상쇄할 만한 어떤 기운을 나는 공항에서 매번 느끼고 있다. 그것은 굳이 표현하자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비행기 이륙 직전까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저장돼 있는 유언장을 새로 고침하곤 했다. 이 비행이 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리 안전하게 설계된 운송 수단이라고 해도 지면에 닿지 않는 채로 움직인다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위험천만하게 여겨졌고, 그런 가운데 비행기가 안전하게 지면에 랜딩하는 데 성공하면 나는 늘 ‘살았다!’ 생각했다. 이번에도 죽지 않았다, 살아남았다, 라고. 죽을 뻔했던 사람이 그렇듯 나는 공항에서 언제나 은은한 희열에 차 있다. 밀려있는 일도, 추레한 몰골도 그저 감사하다. 피곤함도 달고 맛있기만 하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