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유리 에세이

입력 2021-10-07 19:51

(전략)
가파른 하늘 아래로 뜨겁고 푸른 달빛이 비친다.
나는 목매달린 강아지들의 지하실에서 너무 일찍 깨어나 시선을 어둠 속에 담근다.
더듬거리며

천천히
철장이 있던 자리에 의식이 돌아온다
꿈의 앙금들과 성난 액체들이

나의 한복판으로 다시 헤엄쳐온다
이제 나의 밤을 채우는 것은 대개 성난 꿈들이다.
실연 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다-

푸르고 검고 붉은 무언가가 분화구를 폭발시킨다.
나는 분노에 관심이 있다.
나는 그 기원을 찾아 기어오른다.
(후략)

-앤 카슨 시집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중

국내 첫 소개되는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의 시집. 인용한 시는 85페이지에 달하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장시 ‘유리 에세이’의 일부다. 카슨은 시라는 장르에 대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실험으로 유명하다. 1995년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시집이자 대표작인 이 책에서 카슨은 소설같은 시, 희곡같은 시, 일기같은 시, 에세이같은 시 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