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선 방탄소년단(BTS)이 바른 우리말을 쓰자고 외치는 상상을 해보세요. 케이팝 우상이 전하는 메시지에 많은 팬이 함께 해주지 않을까요?”
권재일(68) 한글학회 회장의 하루는 우리말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한글학회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일상 생활에서 마주한 외래어에 대한 아쉬움부터 털어놨다. 그는 이날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 출입문에 ‘OPEN’이라고 걸려 있는 팻말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권 회장은 “‘영업 중’이라는 단어를 쓰면 촌스러운 건가요?”라고 되물었다.
권 회장은 “한글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이 낮아 우리말이 냉대받고 있다”고 했다. 우리말을 쓰면 왠지 모르게 촌스럽고, 영어나 한자 등 외래어를 쓰면 남들보다 더 뛰어난 것처럼 여겨지는 마음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유명 호텔 식당에서 사용되던 ‘조리장’ ‘조리법’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셰프’ ‘레시피’라고 바꿔 쓰는 게 일상이 됐다.
권 회장은 여기에 더해 행정기관들과 언론이 쉬운 우리말 쓰기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 ‘부스터샷’(추가접종)이 대표적인 경우다. 권 회장은 “부스터샷은 ‘추가접종’이라고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며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전문용어를 그대로 쓰더라도, 국민 앞에서 용어를 사용할 때는 한 번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언론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권 회장은 “국민의 안전·생명과 직결된 용어는 언론이 한 차례 더 걸러서 꼭 순화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용어의 남발로 의사소통의 한계가 생기고, 이는 다시 정보의 양극화를 불러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경고다. 그는 “한글학회 같은 시민단체가 쉬운 우리말을 쓰자고 백 번 외쳐봤자 효과가 크지 않다”며 “여론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언론, 정부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뒤 우리말 연구에 일생을 바친 권 회장은 ‘짜장면 원장’으로도 유명하다. 국립국어원 원장을 역임하던 2011년, 기존 ‘자장면’에 더해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도입한 게 권 회장이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와 규범(맞춤법·표준어)에 괴리가 크다면 조정해야 한다”며 “쉽고, 정확하고, 품격 있는 우리말을 통해 국민들이 편하게 의사소통하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