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때문에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했던 불만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다가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 음악에 꽂혀 학교 밴드에 보컬로 들어갔다. 매일 음악에 빠져들면서 술, 담배, 폭력도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 그런데 밤엔 자주 가위에 눌리며 이상한 일을 겪었다. 남녀 여러 명이 옆에서 기분 나쁘게 웃으며 ‘이 바보 같은 놈, 지가 뭐하는지도 몰라’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박쥐같은 시커먼 물체가 장롱 위에 앉아 내려다보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해 들어간 록밴드는 실력을 인정받고 인기가 폭발하며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러다 지역 최고 밴드에 스카우트 돼 대학 록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화려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대곡과 정통 헤비메탈 곡들을 노련하게 연주해 관중들의 폭발적 호응을 받았다. 무대가 주는 환락과 관중들의 환호, 스타로서의 인기, 공연 후 찾아오는 여자들은 나를 깊은 환상과 중독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유명 록커들의 타락한 생활과 비참한 최후들의 실상을 보며 공연 후의 허무감과 공허함, 우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를 찾아온 동생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며 예수님께 모든 문제의 답이 있다고 했다. 현대의학을 공부하는 의대생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분개했지만 생각이 깊고 모범생인 동생의 확실한 신앙을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출근할 때도 선글래스와 팔찌, 퍼머한 긴 머리에 귀걸이와 부츠를 신고 출근할 정도로 나는 록커의 환상에 젖은 현실 부적응자였다.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우리나라의 유명 록밴드 오디션에서 탈락하자 매일 술에 파묻혀 우울과 비관에 빠져들었다.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며칠 후 소주 2병을 들고 잠실 고수부지로 향했다. 단숨에 소주를 다 마시고 물에 뛰어들려는 순간 갑자기 예수님 얘기를 하던 동생이 생각 나 마지막 전화를 했다. “형, 어디야?” “어, 한강 고수부지.” “형, 거기서 지금 뭐하는 거야, 제발 빨리 집에 가.” 그 소리에 갑자기 울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야수처럼 울부짖으며 발길을 돌렸다.
얼마 후 어머니는 담도암으로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장남인데 속만 썩인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어느 날 무심코 책꽂이에서 먼지 앉은 성경을 꺼내들었는데 마가복음이 딱 펼쳐졌다.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순간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완악한 자야’라는 음성이 천둥처럼 울렸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이것이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정확히 비춰졌다. 그분 앞에서 방탕하게 내 멋대로 살았던 삶이 선명하게 보여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내게서 우울과 어두움이 떠나며 오직 예수님만을 위해 살리라는 결단이 섰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세상 음악을 할 수 없어서 200여장의 LP와 여러 대의 일렉기타, 앰프를 모두 없앴다. 물론 담배와 술도 한순간에 끊었고 비웃음과 비아냥거림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 교회 공동체가 있는 춘천으로 이사했는데, 마침 동생이 운영하는 병원의 물리치료사를 제안했다. 마흔이 넘어 물리치료과에 입학해 3년간 고생 끝에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에게 물리치료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시간은 너무 행복하다.
우울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끈 록음악에서 빠져나오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하늘 가족 공동체와 함께 푯대만 바라보며 달려갈 것이다.
임국진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