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아내가 남편에게

입력 2021-09-30 18:59

내 잘못들은 용서해 주세요
수십 년 전 사랑으로:
잘 있어요.
나는 바다를 떠다녀야 합니다,
나는 눈 속에 가라앉아야 해요,
나는 죽어야 하네요.

당신은 이 태양을 쬘 수 있어요,
와인도 마시고 또 음식도 먹고요:
잘 있어요.
난 채비를 하고 뛰어가야 해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발이지만:
나는 죽어야 하네요.

텅 빈 바다를 항해하고,
차가운 침대에서 잠이 들고:
잘 있어요.
당신은 잡고 계셔도, 나는 가야만 해요.
당신 흐느껴 우셔도:
나는 죽어야 하네요.

한 친구에겐 입맞춤을,
두 사람에겐 함마디 말을,-
잘 있어요:-
당신 머리 한 타래 보내 주세요,
당신 친절을 베풀어 주세요:
나는 죽어야 하네요.

당신에겐 한마디도 안 할래요.
머리 타래도 입맞춤도 없어요,
잘 있어요.
우리는, 하나인데, 둘로 갈라서야 하네요: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
나는 죽어야 하네요.

크리스티나 로세티 시집 '고블린 도깨비 시장' 중

19세기 영시문학사에서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영국 여성 시인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첫 시집이 '민음사 세계시인선' 50번째 책으로 나왔다. '아내가 남편에게'는 죽음을 앞둔 아내가 남편에게 남기는 말이다. 죽음과 이별의 감정을 사실적이면서도 절실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