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다. 그간 2, 3년마다 계속 이사를 해왔지만 그다지 짐이 없어 늘 스스로 이삿짐을 꾸리다가 처음 포장이사를 불렀다. 인부들께서 다 알아서 짐을 포장해주고 옮겨주고 풀어주는데 어째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군가 이사 스트레스가 사별 스트레스 다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라더라 하고 알려주었다. 스트레스의 정도를 그렇게 간명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어쨌든 고통스러운 내 상태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라는 말 같아 좀 위안이 됐다.
아, 그사이 짐이 늘었다. 그저 내 행복을 위해 샀던 물건들이었는데 이게 이사를 떠날 때는 고스란히 불행의 목록이 되다니. 나는 충격에 휩싸인 채 밥 먹을 공간, 자는 공간, 작업할 공간만 겨우 확보해 놓고 이 글을 쓴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도 나처럼 새 집과 아수라장이 된 공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광기 어린 눈으로 여기저기를 휘젓고 뛰어내리고 올라타고 있다. 민폐일 뿐인데 자신들은 대단한 모험을 하고 있다고 단단히 착각한 얼굴이 얄미워 죽겠다. 평소 때보다 더 날뛰다 보니 더 빨리 배가 고파지고 사료와 물을 찾아 먹는 횟수도,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더 늘었다.
요 며칠 고양이들을 고길동이 둘리 바라보듯 하고 있다. 고양이들이 이토록 껄끄럽게 보이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의 질감이 저절로 짐작이 됐다. 사실 그들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그게 내 마음에 따라 개구지게도, 밉게도 보였다. 그걸 진즉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예뻐 보일 때는 나까지 예뻐 보였고 그들이 미울 때는 그 마음을 품은 내가 더 미워서 속상했다. 고양이들을 통해 나는 내 마음까지도 동시에 검사를 받는다. 말하자면 그들은 내 마음의 거울인 셈이다. 털 달린 거울. 어서 새 보금자리가 정리돼 털 달린 거울 속 내가 보기 좋아지기를 바란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