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촬영… 말 그대로 ‘오징어’가 됐죠”

입력 2021-09-30 04:02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우 이정재(왼쪽)와 박해수. 넷플릭스 제공

K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전 세계 1위에 오른 ‘오징어 게임’에는 쌍문동 선후배 기훈(이정재)과 상우(박해수)가 등장한다. 둘은 극한상황에서 상반된 인간성을 보여주며 극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이정재는 29일 화상인터뷰에서 “기훈을 연기하며 많은 걸 벗어던졌다는 느낌이었다”며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연기와 극한에서 보여줄 수 있는 연기가 섞여서 왔다갔다를 계속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기훈은 ‘드래곤 모터스’에서 구조조정 당한 후 치킨집과 대리운전을 하다가 경마장을 전전하는 밑바닥 인생이다. 이혼을 당한 뒤로는 딸의 얼굴을 보기도 어렵다. 드래곤 모터스는 쌍용자동차를 연상시킨다. 이정재는 “이런 현실이 만들어진 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무겁다. 회사 다닐 때 죽어가는 친구를 지키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나오는 장면을 찍을 때 슬펐다”고 말했다.

기훈은 게임에 최고령 참가자로 나오는 일남을 향해 인간미를 드러낸다. 이정재는 “기훈은 보잘것없는 약자다. 자신과 같은 약자를 봤을 때 측은지심이 발동돼 지나치지 못하는 심리가 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정재가 ‘잘생김’을 내려놓았다’는 평에는 “말 그대로 ‘오징어’가 됐다. ‘모자가 너무 안 어울린다’ ‘옷은 왜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도 “기훈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했기 때문에 망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촬영을 하지 않았다. 극 중 달고나를 핥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다가도 ‘목숨 걸고 하는 거니까 그럴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상우는 ‘쌍문동의 자랑’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입학생이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엘리트지만 고객 돈으로 한 투자에 실패해 거액의 빚더미에 앉아 게임에 참가하게 된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른 사람을 탈락시키는 데에 매몰돼 있는 인물이다.

박해수는 “상우 캐릭터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는데, 이런 인간상에 욕을 해주는 건 좋은 거로 생각했다.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라는 평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상우가 박탈감과 자격지심 때문에 질투심이 많은 캐릭터라고 이해했다. 박해수는 “한국이 가진 1등지향적인 모습을 알고 싶어 명문대 출신을 많이 인터뷰했다”며 “경쟁 사회에선 대다수에게 박탈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를 상우에게 녹여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촬영을 하는 동안 집에 와도 내려놓고 편히 쉬지 못했다. 상우의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라는 마음에 공감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무서울 때가 있었다”며 “감독님이 촬영을 마치고 상우는 해수가 아니면 안 되는 캐릭터였다’는 말을 해줘 힘이 났다”고 말했다.

이정재와 박해수는 어려운 촬영을 마친 서로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정재는 “해수씨는 덩치와 다르게 귀여운 면이 많다. 촬영 현장에서 해수씨의 밝은 성격으로 어려운 구간들을 잘 이겨냈다”고 칭찬했다. 박해수는 “캐릭터 안에서 살면서 힘드니까 배우들끼리 서로 의지를 많이 했는데 이정재 선배가 정말 가깝게 다가와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