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감독은 아직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그가 만든 ‘오징어 게임’이 K드라마 사상 최초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미국 1위, 전 세계 1위에 오른 게 실감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황 감독은 28일 화상 인터뷰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덕에 전통 갓이 유행한다는 말을 듣고 ‘오징어 게임’을 찍으며 ‘달고나도 비싸게 팔리는 것 아니냐’고 농담했는데 실제가 돼서 얼떨떨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마존 등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선 극에 등장하는 것과 유사한 달고나 키트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감당할 수 없는 빚 때문에 벼랑 끝에 몰린 456명의 참가자가 456억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추억의 게임을 한다는 설정의 9회 분량 드라마다. 1등을 하거나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게임으로 현대사회의 무자비한 생존경쟁을 꼬집었다. 극에 등장하는 ‘징검다리 게임’이 가장 상징적이다. 낭떠러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길을 건너려면 18차례 유리 발판을 밟아야 하는데 절반은 깨지기 쉬운 일반 유리, 절반은 강화 유리다. 확률은 반반이다. 주인공 기훈(이정재)은 우연히 참가자 16명 중 마지막 차례가 된다.
황 감독은 “앞사람이 끝까지 가야 뒤에 있는 사람이 살 수 있다”며 “승자는 패자의 시체 위에 떠 있으며 패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에 가장 잘 와 닿는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08년이었지만, ‘난해하다’ ‘기괴하다’는 평 때문에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다. 서랍 속에 잠들어있던 ‘오징어 게임’은 10여년 만에 빛을 발했다. 황 감독은 “현실감 있는 작품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10년이 지나 서바이벌에 어울리는 서글픈 세상이 된 게 원인”이라며 “전 세계가 게임에 열광하고 남녀노소가 가상화폐 주식 부동산에 돈을 건다”고 말했다.
서바이벌 장르의 수많은 콘텐츠 가운데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이유를 묻자 황 감독은 “다른 작품에선 영웅을 내세워 어려운 게임의 승자로 만드는데, ‘오징어 게임’은 루저들의 이야기다. 영웅도 천재도 없다. 주인공 기훈도 남의 도움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간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등 한국의 옛날 놀이가 주 소재로 등장한다. 황 감독은 “방탄소년단과 봉준호 감독에서처럼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라고 한다. 단순한 한국의 옛날 놀이가 세계적으로 호소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시즌2 제작 관련 질문에는 확답을 피했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이가 6개나 빠져 당분간 쉴 것”이라며 “너무 많은 분이 좋아해 줘서 안 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 같다.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몇 개 있다”고 답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