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약간 죽은 체하고 있으면
괜찮아
숨 쉴 구멍이 생기고
월급도 나오고
조금 죽은 체하고 있어야 하지만
걸어갈 곳이 있고
가끔 둥글게 모여 밥을 먹고
얼음이 녹아 투명해진 아메리카노, 반만 올린 블라인드, 몇 알 남지 않은 비타민, 먼지와 먼지, 먼지와 먼지, 먼지… 사실들
그러나
살아 있어
우리는 죽지 않았으니까
천국이나 지옥을 말할 수 있잖아
(중략)
잘 살자고
손을 꼭 잡고
그래도 잘 살아야 한다고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어 주며
조금 더
걸었고
박은지 시집 ‘여름 상설 공연’ 중
젊은 여성 노동자로 보이는 화자가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건네는 말처럼 보인다. ‘약간 죽은 체하고’ 있으라고 말한다. 그것도 괜찮다고. 그렇지만 그건 살기 위한 포즈다. ‘그러나 살아 있어’야 한다.